"화성도 가는 세상… 생각 바꾸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당신삶]

"화성도 가는 세상… 생각 바꾸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당신삶]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28) 농산물 가치 더하는 이종수 씨
당근 주스 신맛 잡아 대박 제품으로… 제주와 첫 인연
제주서 여덟 번째 회사 생활하며 제주산 농산물 주목
"차별성 있는 원료 확보… 청정 제주 브랜드로 차별화"
  • 입력 : 2024. 12.09(월) 17:23  수정 : 2024. 12. 17(화) 18:57
  •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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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절반 이상인 30년 넘게 식품 기업에서 일해 온 이종수 씨는 "제주 농산물로 소비자 기호에 맞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신비비안나 기자

[한라일보] 제주에 온 지는 5년 밖에 안 됐지만 제주는 약 30년 전, 그의 삶의 중요한 장면에 놓인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제주에서 또 다른 도전을 하게 될 줄은. 스물여섯부터 식품을 연구·개발하고 생산하는 일을 해 온 이종수(61) 씨는 이제 제주에서 나고 자라는 농산물에 눈을 두고 있다.

|제주 당근 '대박 상품'이 되다

경북 영천이 고향인 종수 씨는 1989년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식품 전공을 살려 얻은 첫 직장은 인삼 회사였다. 하지만 입사 3년 만에 회사가 부도나 대구·경북지역 코카콜라 보틀링 업체로 자리를 옮겼다. 미국 본사에서 원액을 들여와 이를 배합해 판매하는 곳이었는데, 이 업체 자회사에서 음료 개발 업무를 맡게 되면서 제주와 처음 연결됐다.

그때 종수 씨가 주목한 게 '당근' 주스였다. 당근이란 소재 자체의 건강성을 봤다. 하지만 이미 내로라하는 기업이 만든 당근 주스도 잘 팔리지 않던 때였다. 그래도 확신이 있었다.

그는 "보통 새 제품을 홍보하려면 어떤 소재를 썼고, 어떤 효과가 있는지 일일이 알려야 한다"면서 "그런데 당근은 항암 효과가 있는 베타카로틴을 비롯해 여러 성분이 풍부하다. 다들 몸에 좋다는 걸 아니까 별다른 광고를 하지 않아도 맛있게만 만들면 소비자가 선택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더 '맛'이 중요했다. '진짜 당근'을 주스 한 병에 담아야 했다. 당시 시중에 나왔던 당근 주스는 미생물 발생을 막으려 넣은 구연산 비율이 높아 신맛이 났다. '당근 자체를 먹는 것처럼 주스도 시지 않아야 한다.' 이 생각으로 종수 씨는 제품의 안전성을 유지하면서도 자연적인 맛을 살린 주스를 개발해 출시해 냈다. 1995년 6월 15일,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는 날이다.

반응은 '대박'이었다. 종수 씨의 생각처럼 시지 않는 당근 주스가 소비자의 입맛을 잡았다. 그 주스에 주원료로 선택된 게 제주 '구좌 당근'이었다. 당근 주스가 출시됐던 첫해에 하루 가공 양만해도 200t에 달했다. 주야간 모두 100t씩 제주 당근을 착즙하고 농축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다시 생각해도 하루에 200t의 원료를 쓴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라며 "지금 구좌 당근이 유명한 것도 이런 영향이 있지 않을까"라면서 종수 씨가 웃었다.

이미 판매되던 당근 주스도 별 인기가 없던 1995년, 이종수 씨는 '제주산 당근'으로 만든 주스를 새롭게 내는 승부수를 던졌다. 신비비안나 기자

|건강 원료에 맛과 품질로 '승부수'

당근으로 시작한 음료 개발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그중에는 포도, 오렌지 주스처럼 널리 팔리던 대중적인 상품도 있었지만 남들이 안 하는 것에 더 관심을 뒀다. 이미 다른 회사에서 판매 부진으로 단종한 토마토 주스를 한 달 뒤에 출시한 것도 종수 씨의 생각이었다. 인기 없던 상품을 다시 만드는 건 사실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이 역시 맛으로 승부를 봤다.

"제가 어릴 적 시골에선 밭마다 토마토 한두 그루를 심어놨어요. 열매가 빨갛게 잘 익으면 깨끗이 물에 씻고 칼로 썰어서 설탕을 뿌려 먹었죠. 제가 어릴 때 그렇게 먹었기 때문에 그 맛을 타깃으로 주스를 만들었어요. (다른 두 음료회사에서 만들던) 토마토 캔 주스가 1996년 8월에 생산 종료됐는데, 저희는 한 달 뒤인 9월에 토마토 주스를 내놨죠. 고객이 눈으로 보고 믿고 선택할 수 있도록 유리병에 담아 출시했는데, 그게 또 히트를 쳤어요."

매번 남과는 다른 길에 승부수를 뒀다. 알로에를 일반 식품 원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된 1998년, 종수 씨가 가장 먼저 만들었다는 알로에 주스도 그랬다. 알로에 알맹이(겔)를 둥둥 띄워 만든 주스를 알로에 특유의 이미지를 살린 초록색 병에 담아 출시했는데, 이 역시 반응이 컸다. 큰 인기에 너도나도 알로에 주스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150개 국으로 수출하는 상품이 됐다. 그는 "국내에 식품을 수출하는 업체 중에 알로에 음료를 수출하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보였다.

종수 씨가 그때 만든 주스는 지금까지 길게는 30년간 소비자를 만나고 있다. 하지만 그가 2000년까지 9년간 숨 가쁘게 일했던 회사도 결국 파산하며 다른 기업으로 넘어갔다. 그래도 그간의 경험과 성과는 큰 이력이 됐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첫 직장부터 제주에 내려오기 전까지 모두 7곳의 회사를 거쳐야 했지만, 그 사이 평사원이었던 종수 씨는 임원 자리까지 올랐다.

제주에서 2019년부터 여덟 번째 회사 생활을 하는 이종수 씨는 남과는 다른 '차별성'으로 제주 농산물에 가치를 더하고 싶다고 했다. 신비비안나 기자

|'청정 제주'로 차별화하다

그는 2019년부터 제주에서 여덟 번째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올해로 40년이 된 제주농산주식회사에서 전문 경영인으로 새롭게 일하는 중이다. 그는 제주산 당근으로 주스를 만들었던 인연으로 "제주로 오게 된 것 같다"며 "제주에 있는 농산물을 가지고 소비자 기호에 맞는 제품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제주에서의 그의 행보도 남과는 좀 다르다. 제주에 온 그 해에는 '생강' 재배에 뛰어들었다. "처음에 왔을 때 제주도는 '생강이 안 된다'고 하더라"면서 "제가 보기엔 기후가 온화해 생육 기간이 더 긴데 안 될 이유가 없었다"고 그가 말했다.

호기 있게 시작했지만 처음엔 뭐 하나 건질 게 없었다. 태풍 3개가 잇따라 강타하면서 침수 피해를 입었다. 거기에서 멈출 법도 한데 다음 해에 또 도전했다. 지역 농민 3명에 맡겨 각자의 밭에서 생강을 재배해 보는 것으로 방법도 바꿨다. 그렇게 가능성을 엿봤다. 두 밭에서는 잘 안됐지만, 한 밭에선 정상 수확이 이뤄졌다.

"통상적으로 안 되는 쪽이 많았으니까 다들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안 되는 사람에게만 맡겼다면 저 역시 이 작물은 제주에선 안 되는구나 판단했겠지만 생강을 재배해 수확하면서 차별성 있는 원료를 확보할 수 있었죠. 다른 업체가 육지산 생강을 쓸 때 저희는 '제주산 생강'으로 청정 제주라는 브랜드로 접근할 수도 있고요."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차별성'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과는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는 거다. 그가 말하는 6차 산업(농촌융복합산업)의 생존 전략과도 맞닿아있다.

"어떤 제품이든 차별성이 반드시 중요해요. 제가 이전에 만든 주스도 다른 상품과 차별화를 둔 것이었지만, 제가 만들라고 해도 (당장 인기가 없으니 다른 곳에선) 안 만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생각해 봐도 '레드오션'에 뛰어드는 것보다 '블루오션'을 창출해서 뛰어드는 게 성공 확률이 높아요. 6차 산업도 남들이 가지 않는 블루오션 길을 만들어 개척하고 시장에 맞게 대응해야지요."

차별성은 결국엔 발상을 전환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종수 씨는 믿는다. 그가 인생의 절반 이상을 기업에서 일하며 얻은 지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코끼리가 이 사무실에 들어올 수 있겠나'라고 누가 물었어요. 그러면 보통은 문 크기만 보고 판정해서 '들어올 수 없다'고 하죠. 그런데 여러 방법이 있잖아요. 코끼리 키가 3m라면 문을 4m로 만들면 되는 거고, 그 문을 나무로 만들지 철제로 만들지 정하면 비용도 알 수가 있고요. 그 비용을 들이면 충분히 코끼리를 들어오게 할 수 있는데, '안 된다'고 하면 거기에 끝나버리는 거죠. 화성에도 가는 세상인데 뭔들 못하겠습니까. 쉽지는 않겠지만 좀 더 생각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겁니다." 취재·글=김지은 기자, 영상 촬영·편집=신비비안나 기자

한라일보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당신삶)

수많은 삶은 오늘도 흐릅니다. 특별한 것 없어도 하나하나가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모여 비로소 '우리'가 됩니다. '당신삶'은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삶을 마주하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 문을 열어 주세요. (담당자 이메일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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