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감염병전문병원 앞길 여전히 불투명

상급종합병원·감염병전문병원 앞길 여전히 불투명
원정진료 비용만 2300억원… 권역 분리돼야 상종 가능
감염병 전문병원 기재부 반대로 예산 한푼도 반영 안돼
  • 입력 : 2025. 01.02(목) 09:10  수정 : 2025. 01. 03(금) 17:15
  • 이상민기자 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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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제주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민생토론회. 한라일보DB

[한라일보] 제주는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동원할 수 있는 의료 자원이 한정적이다. 제주지역 상급종합병원(이하 상종병원)과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논의는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됐지만 수년째 제자리걸음만 했다. 상종·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방안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세우며 돌파구를 찾는 듯했다. 그러나 임기 4년 차를 눈 앞에 둔 현재까지 눈에 띄는 성과는 없다. 오히려 윤 대통령 탄핵으로 불확실성만 더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상급종합병원 1차 관문은 권역 분리=상급종합병원은 이식 수술 등 난이도가 높은 의료 행위를 전문적으로 하는 3차 의료기관을 말한다. 상종병원이 되려면 중증환자 진료 비율이 30%를 넘어야 하고 내과 외과 등 진료 과목도 20개 이상이어야 한다. 지역 완결형 의료 전달 체계는 1차 병원(30병상 미만 의원급)-2차 병원(500병상 미만 전문·종합·요양병원)-3차 병원(500병상 이상 대형병원)이 서로 유기적으로 제 역할을 할 때 완성되지만 제주에는 1·2차만 있고 3차 병원이 없어 해마다 수많은 도민이 원정 진료를 떠나고 있다. 지난 2022년 기준 다른 지역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제주도민은 14만1021명으로 이들이 지출한 원정 진료비만 2393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항공비, 체류비까지 포함하면 그 비용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이유로 제주에 상종병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지만, 실제 설립 움직임은 윤석열 정부 2년차인 3년 전부터 시작했다. 그해 제주대병원이 도내에서 처음으로 상종병원 지정 신청서를 제출하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상종병원은 의료 권역별로 지정하는데 제주가 서울권으로 묶여 있어 서울대학교·삼성서울 등 국내 최정상급 병원과 경쟁을 펼쳐야 했기 때문이다. 상대 평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증 환자 비율은 제주대병원이 36%, 서울 소재 대형병원이 60~80%로 2배 가량 차이를 보인다.

이같은 문제로 제주도는 제주 의료권역을 서울권역에서 분리하기 위해 정부에 수차례 건의하고, 제주 국회의원들은 개정안도 발의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의료 권역은 고시로 결정하기 때문에 굳이 법을 개정하지 않아도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지만 당시로선 대통령 공약도 먹혀들지 않았다.

논란을 의식한 듯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다시 한번 상종병원 지정을 약속했다. 또 복지부는 진료권역을 조정하는 용역을 올해 상반기까지 할 계획이다. 그러나 제주가 독립권역으로 분리될 지 용역 결과를 예단할 수 없을 뿐더러, 탄핵으로 대통령 공약이 제대로 이행될지도 의문이다. 이런 우려에 대해 제주도는 "약속 이행 상황을 지속 모니터링하며 정부와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만 했다.

▶서랍 속 용역 수준=제주 감염병전문병원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이미 지난 2016년 정부 스스로 용역을 통해 제주에 감염병 전문병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결론냈지만 8년이 지난 현재까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감염병 전문병원은 독립병동을 갖춰 감염병 치료를 전담하는 의료기관으로, 윤 대통령 제주 공약이기도 하다. 차질을 빚는 가장 큰 이유는 부처 간 이견 때문이다. 질병관리청이 제주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예산을 요청해도 기획재정부는 번번이 수용하지 않고 있다.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절차는 '예산 반영-설립 권역 선정-의료기관 선정' 등 예산부터 확보해야 나머지 단계로 나갈 수 있는 구조다. 이중 실시설계비는 예산 확보 과정의 첫 관문으로 이 예산이 반영돼야 비로소 설립 절차가 시작된다.

질병관리청은 제주 권역 실시설계비로 1억원을 내년 예산에 편성했지만, 지난해 9월 기재부는 예비타당성(500억원 넘는 국가 재정사업의 경제성을 분석해 실시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 조사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액 삭감했다. 수도권, 호남 등 다른 권역 감염병 전문병원의 경우 실시설계비를 먼저 반영해 병원 선정까지 마친 뒤 사업비가 5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예상되면 이후 경제성을 분석하는 '사후 예타'를 거쳤지만, 기재부는 제주의 경우 앞선 사례와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업비가 500억원이 넘을 것이 뻔하다며 '사전 예타'를 통과해야 예산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도는 국회 심의에서 삭감된 예산을 되살리려 노력하고 있지만 탄핵 정국으로 이마저도 불투명하다. 도 관계자는 "국회 예결위에 예산을 되살려도 기재부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실낱 같은 희망을 안고 예결위 일정이 잡히길 기다렸지만 감감 무소식"이라며 "아무래도 내년 예산 반영은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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