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빈공간 아트페어' 전시 모습. 아트스페이스 빈공간 제공
[한라일보] 유난히 혹독했던 겨울을 "이대론 못 보내겠다"는 생각이 시작이었다. 몸이 추운 계절, 마음에도 헛헛한 냉기가 도는 미술계에 '연대'라는 작은 불을 피웠다. 저도 그랬듯, 이 시기에 혼자 웅크리고 있을 작가들에게 온기가 닿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올해로 3년째, 겨울의 절정에서 '빈공간 아트페어'가 불씨를 되살린다.
'제3회 빈공간 아트페어'가 제주의 새해 첫 아트페어(미술 시장)의 문을 연다. 제주시 원도심 무근성에 자리한 아트스페이스 빈공간에서 15일부터 시작된다. 시각예술가이자 빈공간을 운영하는 이상홍 대표는 전시, 공연 소식이 드문 이맘때를 작가들의 "보릿고개"라며 "혼자 버티지 말고 연대하자는 마음이 컸다. 위로받고 싶고 연대하고 싶고, 굉장히 개인적인 의지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연대에 대한 바람은 새로운 연결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빈공간 아트페어에는 여태껏 가장 많은 30인의 시각예술가가 참여하고 있다. 한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김을, 정정엽, 김태헌을 비롯해 제주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전기숙, 박길주, 김도마, 김기대, 전선영, 안수연, 장숙경, 조향미 작가 등도 이름을 올렸다. 제주 출신까지 포함해 '제주 작가'가 절반 이상을 넘어선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빈공간 아트페어를 키울 '접점'도 늘고 있다. 빈공간을 중심으로 바로 옆 카페, 병원, 사무실 등에 걸린 그림들이다. 이들 모두 빈공간 아트페어를 통해 구입된 작품이다. 이 대표는 "그 카페에 가면 저희 아트페어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런 식으로 소소한 접점들이 많이 확산됐다"고 했다. 이런 접점이 결국엔 '확장'을 가능하게 할 거라고 그는 믿는다.
"작가들에게 작품 배송을 지원해 주지 못해 우체국 택배로 작품을 받고 있는데, 3년째 되니 집배원분들도 (택배가 늘어나면) 행사가 시작되는 걸 아세요. 이분들을 비롯해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전시를 보러 오고 작품이 맘에 들면 구입하는 '확장'이 이뤄졌으면 좋겠죠. 아마 꿈에도 본인이 직접 그림을 산다는 생각은 안 하시겠지만, 예술작품 하나를 내 공간에 두고 매일 보는 일이 주는 행복감과 다른 에너지를 얻게 하는 '아우라'는 사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거든요. 작가 입장에선 정말 순수하게 내 작업에 흥미가 있고 관심이 있어 사주는 컬렉터와의 접점이 계속 작업을 하게 하는 엄청난 원동이 되고요."
빈공간 아트페어를 하루 앞둔 14일 만난 이상홍 아트스페이스 빈공간 대표. 김지은기자
빈공간 아트페어에선 회화부터 판화, 드로잉, 오브제 설치, 사진, 조각 등 시각예술 작품 160여 점이 발표되고 판매된다. 판매가는 10만원대에서 100만원 내외다. 단, 현장에선 작품과 작가 정보 등을 안내하는 작품 캡션을 볼 수 없다. 첫 회부터 지금까지 지켜온 이 '원칙'은 오롯이 작품에 집중해 보는 "능동적 애씀"을 권한다.
이 대표는 "창작 작품을 내 준 모든 작가가 자기가 지향하는 마음을 계속 지키고 고취하려고 애쓰면서 창작을 한다"며 "그렇다면 보는 사람도 마음을 먹고 시간을 내고 와서 정성껏 들여다보는 애씀이 필요하다"고 했다. 방문 전 '사전 예약'을 해야 된다고 정한 것도 그래서다.
올해는 유독 행사를 여는 마음이 무겁다. 세밑에 벌어진 비상계엄 사태에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까지 그야말로 "덜컹했다"고 이 대표가 말했다. '과연 이 시기에 가능한 일일까'라는 고민에 초대 글을 쓰는 일도 주저됐다. 그럼에도 모든 걸 멈출 수는 없기에 '같이 가자'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예술이라는) 일이 밝은 빛과 희망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기에, 그냥 그렇게 같이 걸어갔으면 좋겠다, 그 길을 가는 예술가와 같이 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럼 길을 걷는 예술가에게도 힘이 될 거고, 그 예술가로 인해 (우리는) 뭔가 피식 웃을 수 있겠죠. 약간 뭉클한 게 또 다른 에너지가 될 테고요. 이런 순환이 계속됐으면 좋겠습니다."
빈공간 아트페어는 오는 2월 28일까지 계속된다. 관람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월요일은 휴관한다. 관람 전 예약 필수. 문의 0507-1347-8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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