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123)물 아래 편지-장이지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123)물 아래 편지-장이지
  • 입력 : 2025. 12.30(화) 02:00
  •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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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당신의 잠에 몰래 찾아가 잠든 당신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옵니다 당신이 눈뜨면 나는 불타오르고 나는 행복해지면 안 되는 사람이라서 당신 눈을 피해 수변(水邊)을 거닐거나 당신에게 하고픈 말을 물 위에 적어봅니다 우레는 물 아래 내려가 쉬고 우레는 물빛 봉투 안에서 잠들고 우레를 깨우면 안 돼, 우레를 깨우면 모두 타버리니까, 물 아래 잠든 우레, 중얼거리다가 중얼거리다가 당신이 잠들면 당신 잠에 몰래 찾아가 당신의 속눈썹을 들여다보고 귀밑머리를 살짝 만지고 나는 행복해지면 안 되는 사람인데, 생각하다가

삽화=배수연



'당신'의 행복에 몰래 들어가 '당신'의 잠든 얼굴에서 행복을 얻어오고, '당신'의 눈을 피해 물 가장자리를 걸으며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행복해지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그 이유도 물 위에 쓴다. 같은 처지에서 타오르는 마음의 우레는 물 밑에 내려보내고 그 뜨거움을 잠재우되 또다시 몰래 당신 잠에 찾아가야하니까! 행복해지면 안 된다는 자책만은 식별되지만 '행복'은 구체(具體)로 확인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당신'의 중얼거림 또한 경청되지만 그 '경청'조차 전언을 담지 못한다. 이 시는 전후 맥락을 다루지 않지만 짧은 줄거리는 화자가 살아낸 일련의 시간을 압축한 것이고, 그에 따르면 화자의 접촉이 "살짝" 이루어지는 곳은 '당신'의 "귀밑머리"가 유일하다. 처음부터 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듯 욕망은 '당신'의 귀밑머리를 만지는 언어로 제한돼 결국 '당신'은 내게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고픈 말"은 듣고픈 말의 운명 안에서 잠들고, 차라리 화자는 시와 '나'를 하나로 접속시키는 길을 가려 한다는 사실만은 드러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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