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웅의 현장시선] 제주국립공원 내 비자림로 확장 서두를 일 아니다

[이영웅의 현장시선] 제주국립공원 내 비자림로 확장 서두를 일 아니다
  • 입력 : 2019. 02.22(금)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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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제주지역 현안이 있었다. 바로 비자림로 확장공사 논란이다. 공사구간의 울창한 수목들이 쓰러지는 모습에 시민들은 분노했고, 안타까워했다. 전 국민의 항의가 빗발치자 제주도는 부랴부랴 공사중단 발표를 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지난 연말 제주도는 비자림로 확장공사 재개를 선언했다. 최근 제주도에 따르면 올 3월부터 다시 확장공사가 진행될 계획이다.

비자림로 확장공사 구간은 2.9km지만 이 사업이 내포하는 의미와 상징성은 남다르다. 그동안 제주도 곳곳에서는 수많은 대규모 개발사업들이 추진되어 왔다. 원시림 같은 곶자왈을 밀어 골프장을 건설하고, 중산간의 너른 초지들은 금세 숙박시설로 뒤덮였다. 오름 군락지 사이로 송전탑과 도로가 들어서고, 골프장 한가운데 오름은 섬처럼 방치되었다. 제주만이 지닌 가치들은 점점 사라져 갔다. 시민들은 비자림로 확장공사를 통해 이러한 제주개발의 현실을 목도하고, 제주도 환경정책의 수준을 가늠하고 있다.

최근에는 비자림로 확장공사 구간이 제주국립공원 예정지에 포함된 사실이 새롭게 확인되기도 했다. 환경부가 발표한 제주국립공원 경계안에 따르면 공사구간 비자림로와 벌채 예정인 도로변 수림지대까지 포함되어 있다. 제주국립공원 확대 지정은 제주도가 제안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국정과제로 선정·추진되고 있는 사업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비자림로 확장공사를 재개하기 전에 제주도와 환경부 간에 협의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제주도는 아직까지 환경부와 협의를 위한 별다른 움직임은 없어 보인다.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심산인 셈이다.

제주도가 비자림로 확장공사 재개를 밝히며 내세운 도로확장의 명분은 구차할 따름이다. 당시 제주도는 삼나무 벌채 면적이 크게 줄었다고 했지만 실제 벌채되는 수목의 수량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비자림로 교통량 조사결과 국토교통부의 4차로 확장 기준을 초과해 도로 확장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사실과 달랐다. 국토부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제주도가 제시한 근거는 '자동차가 포화하는 정도의 개념이지 도로 확장의 근거는 아니며, 도로확장의 타당성을 보기 위해서는 복합적인 계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오히려 도로확장보다는 현재 차선에서 도로 폭을 늘리는 정도의 도로 개선사업으로 교통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방안이 국립공원에 포함된 이 곳의 경관보전에도 효과적이다.

일부에선 삼나무는 경제적 가치가 낮고, 꽃가루 피해 등을 준다는 논리를 내세워 비자림로 확장의 당위성을 언급한다. 하지만 이는 논리적 모순일 뿐만 아니라 본질을 왜곡하는 주장이다. 삼나무의 가치 유무와 도로 확장의 타당성은 인과관계가 없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가령 비자림로 삼나무를 모두 베어낸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 도로의 개설 여부는 별도의 타당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비자림로 확장 논란은 이제 제주도의 환경보전정책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되었다. 과거 개발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청정과 공존의 가치를 지향하는 제주도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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