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주희의 하루를 시작하며] 따뜻하고도 시린 우리의 봄

[권주희의 하루를 시작하며] 따뜻하고도 시린 우리의 봄
  • 입력 : 2024. 04.24(수)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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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한 해를 계절로 셈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하는 계절, 봄이다. 겨울의 차가운 기운이 물러나고 해가 곁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4월은 여러 가지가 움트는 시기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돋아난 새싹, 다채롭게 피어나는 꽃, 식탁에 차려진 향긋한 봄나물을 보면 한 해를 다시금 시작하는 기분마저 든다.

한편, 제주의 4월은 차가운 역사를 애도하는 추모의 물결이 이어진다. 4·3 평화공원에서는 4·3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추념식을 진행해 유가족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보듬는 자리를 마련한다. 미술계에서는 매년 4·3 미술제를 통해 사건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시각화하여 보여준다. 필자도 몇 해 전, 한 기관의 의뢰로 4·3 청년작가전 '다시 돌아, 그린 봄'이라는 전시를 기획한 바 있다. 당시 제주에 입도한 지 고작 2년 정도 되었을 무렵인데, 내가 제주라는 지역에 대해 얼마나 인지하고 있으며, 특히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 사건을 꺼낼 자격이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결론적으로 전시는 현재의 우리가, 그리고 미래의 세대가 지녀야 할 자세에 초점이 맞춰졌다. 즉, 역사적 사건 자체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삶과 죽음'의 해석에 중심을 두고 역사적 반성을 토대로 우리 세대가 추구해야 할 지향점을 모색해 보고자 했다.

누구나 인생에서 겪는 감정이 있다. 이를테면, 존재의 부재, 소멸해가는 대상에 대한 아픔, 부재의 흔적과 자취에서 느껴지는 그리움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역사를 되짚어보면 역사가 지닌 아픔은 특정한 누구의 것이 아니라 나와 우리의 것이 된다. 제주에서 나고 자랐든, 타지에서 바라보았든 역사를 인지하고 해석하고, 기록하고 사유하는 일련의 과정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세월호 참사 10주년이기도 하다. 10년 전, 그날의 나는 두 돌이 되지 않은 첫째 아이를 안고 종일 보도되는 뉴스를 보았다.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 함부로 이해할 수도, 위로할 수도 없지만 엄마로서 헤아려 짐작할 수 있는 감정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역사란 조용히 잠들어 단절된 과거가 아니다. 지구가 공전하여 제자리로 돌아와 봄을 알리듯 과거는 또다시 우리와 연결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해석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현재와 미래가 연결되어 서로를 반추함을 뜻한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기록하는 무게만큼 현상을 바라보고 해석함에 있어 지속적이고 균형 있는 사유가 중요하다. 자연이 움트는 봄처럼 우리의 사유도 조금씩 움트는 4월이 되었으면 한다. 더불어 먼 훗날, 세대를 거듭하여 새로이 그려지는 역사는 차갑고 시린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따뜻한 '봄의 언어'로 덧씌워 그려지기를 염원한다. <권주희 스튜디오126 대표·독립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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