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 연합뉴스
[한라일보] 제주특별자치도가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명명할 때 '무안국제공항'도 함께 써 달라고 정부에 공식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자치도는 대다수 언론과 정부 부처가 무안공항을 빼고 항공사명이 들어간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또는 참사로만 표현해 이번 사고가 제주에서 일어난 것으로 오인할 수 있다며 정확한 사고 발생 장소까지 함께 명기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비극적 참사에서 지역명을 앞세우면 지역 혐오와 희생자들의 트라우마를 부추길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9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제주도 공항확충지원단은 지난 3일 행정안전부에 공문을 보내 이번 사고 명칭을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제주자치도는 '참사'라는 표현도 '사고'로 변경하자고 제안했다.
국토교통부 홈페이지 첫 화면에 올라온 희생자 애도 글에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행안부 홈페이지에는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각각 표현돼 있다.
반면 제주도는 홈페이지에 띄운 추모 글에서 사고가 발생한 공항 이름을 함께 적어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라고 적었다.
제주자치도는 사고 명칭에 무안공항을 넣어달라고 요청한 이유에 대해 "대다수가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또는 참사로 부르면서 마치 제주에서 발생한 것처럼 오인할 수 있고 이는 결국 제주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다수의 민원이 있었다"며 "이런 민원들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행안부는 제주도 요청에 현재까지 아무런 입장도 회신하지 않았다.
다수가 희생된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그 명칭을 둘러싼 논란은 이어져왔다.
사고 명칭에 특정 지역명이 들어가면 지역 혐오와 함께 희생자들의 트라우마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국심리학회는 이런 이유로 지난 2022년 10월29일 이태원 한 골목길에서 시민 156명이 사망한 사건의 명칭을 '10·29 참사'로 부르자고 제안했었다.
이번 참사에서도 국회는 지역 혐오 등을 방지하기 위해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기구의 이름을 '12·29 여객기 참사 진상규명과 유가족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위원회'로 정했다.
무안공항 뿐만 아니라 제주항공이란 항공사명 등 특정 지역을 연상하게 하는 단어를 아예 쓰지 않았다.
다만 다수가 희생된 여객기 참사에서 항공사명을 사고 명칭에서 제외하면 책임 소재가 가려진다는 의견도 있다.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대표는 "사고 명칭을 정할 때 제주항공이라는 회사의 책임과 연관성이 가려지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신 대표는 "명칭을 정할 때 있어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 주체는 피해자들"이라며 "그들의 공감과 논의 없이 참사 이름을 특정 지역과 집단의 요구대로 정한다면 피해자 아픔을 외면하고 자신들 이익만 보호하는 이기주의로 비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낙진 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사고 항공사명이 제주로 시작되다보니 지역 내 악영향을 우려하는 제주도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지역 혐오 우려 때문에 지역명 노출을 어떻게든 최소화하자는 논의가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명칭에 무안공항을 넣자고 요청한 건 공적기관인 제주도가 해서는 안된 일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제주자치도 논리대로라면 앞으로 제주에서 큰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 명칭에 제주를 넣어야 한다"며 "제주자치도는 사고 명칭이 아니라 제주의 안전을 어떻게 확보하고, 이를 어떻게 국민에게 알려나갈 것인지 등 본질적인 것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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