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다와 문학] (4)오경훈 연작소설 '제주항'②

[제주바다와 문학] (4)오경훈 연작소설 '제주항'②
바다 잠긴 주검들… 가혹한 섬의 운명
  • 입력 : 2019. 05.17(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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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일 주정공장 터에서 진행된 71주년 제주4·3 예비검속 희생자 위령제.

주정공장에 끌려간 아버지
트라우마 겪는 이순의 한수

'유한' 속 바다 비통의 공간


지난 4월, 제주시 건입동 주정공장 터에 하이얀 종이 조형물을 어깨에 올려놓은 일본인들이 긴 행렬을 이뤘다. 수난의 현장에서 바다에 잠긴 넋들을 위무하는 굿판이었다. 제주땅에 발디딘 이방인들은 제주 토박이 심방의 안내에 따라 제주항연안여객터미널 너머 파도가 물결치는 그 어디쯤 헤매고 있을 고혼들을 달랬다.

오경훈 연작소설 '제주항'(2005)에는 그 이야기가 있다. 운수회사 서기로 근무하다 퇴직한 예순의 한수가 등장하는 '유한(遺恨)'이다.

"6·25전쟁 발발 때 저기 동축항 주정공장 창고로 끌려간 사람들 말예요. 그 사람들 어찌 되었나요? 그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은 죽었다는 뜻 아닙니까? 아버지가 사사로운 일로 가출했다면 저는 벌써 잊었을 거예요. 이처럼 괴롭고 그립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이건 국가가 한 일입니다."

한수는 옆 동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전직 경찰에게 따지듯 말한다. 6·25가 일어나자 재검속으로 연행된 이들을 제주 앞바다에 수장했다, 500여 명을 발가벗기고 제주항에서 약 3마일 떨어진 해상으로 싣고 가 돌을 매달아 떨어뜨렸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전해지고 있는데 그걸 모르냐고 몰아 세운다.

실제로 이 당시 일본 대마도 해안에는 수백 구의 한국인 시신들이 떠올랐다. 제주에서 흘러갔을 주검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지난달 주정공장 위령제에서는 한국에서 떠내려온 시체가 너무 많아 뗏목을 만들어 야마구치, 시마네현으로 다시 보냈다는 말을 들었다는 일본인 증언이 나왔다.

주인공 한수에게 바다는 비통의 공간이다. 짠내음이 밀려들었을 제주항 동부두 주정공장은 제주4·3에서 6·25로 이어지는 동안 최대 규모 수용소이자 감옥이었다. 한수는 환영을 본다. 주정공장 창고 벽 위쪽에 쇠창살이 박힌 자그만 구멍 사이로 덩굴손처럼 감겨붙은 굶주린 자의 앙상한 손가락들이 어른거린다. 그 손들이 눈앞을 가려오면 한수는 철창 속으로 갇혀버리는 것만 같다.

오경훈 작가는 유년기에 4·3을 겪었다. 한의사였던 아버지가 제주읍으로 이사하기 위해 땅을 판 돈 등을 모아뒀는데 산사람들의 습격을 받아 모조리 소실됐다. 실의에 빠진 아버지는 그가 11살때 세상을 떴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피신하며 들었던 총성은 그를 오래도록 붙들었다. 4·3의 기억이 나이를 먹을수록 커졌다는 그는 '당신의 작은 촛불'(1988)을 시작으로 집요하게 4·3을 다뤘다.

제주도민 10분의 1에 가까운 인명이 희생되었다는 4·3 무렵의 제주도는 고립된 섬으로 '피와 눈물과 시체의 삼다도(三多島)'(양정심)였다. '유한'은 바다가 보이는 주정공장을 배경으로 어쩌면 섬이어서 더 가혹했을 역사를 환기시킨다.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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