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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 장편 연재/갈바람 광시곡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13)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입력 : 2019. 05.23.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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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 작/고재만 그림
5-3. 사랑과 미움의 간극





"그게 다 반골 기질을 물려받아서 그렇다는 거야"
"여자들이 경제권을 쥐고 있었거든. 헌데 남자들은 하는 일 없이 큰소리만 쳤지"
"그래서 그런 꼴 못 참는 부인들이 이혼을 요구했구나?"


뜬금없는 소리에 용찬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주에서 태어난 게 무슨 잘못인가?"

"제주 남자들 바람둥이들이 많데요. 그래서 이혼도 제일 많이 하고. 투서도 1위라면서요?"

용찬은 그런 기사가 신문에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건 일반화의 오류다. 더구나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젊음에 낙인찍히는 일은 더욱 억울했다. 해연의 웃음을 머금은 표정을 보니 약 올리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거기에 넘어갈 용찬이 아니었다.

삽화=고재만 화백



"그게 제주의 역사와 관련 있어서 그렇대. 우리 사회 선생님이 그러는데 그게 다 반골 기질을 물려받아서 그렇다는 거야."

"반골 기질?"

"응. 제주가 옛날 죄지은 사람들이 유배 왔던 섬이잖아? 유배 오는 사람들은 다 머리 좋은 양반들이었거든. 시대를 잘못 만나 나라에 중죄를 지었단 말이지. 그들은 남 잘되는 걸 눈 뜨고 못 봐. 남 하는 일엔 항상 꼬투리 잡아 불평하고."

"시기 질투심 많은 후손이라서 투서도 많단 말이지?"

"응, 나쁜 유전자를 물려받은 거지. 그리고 제주는 여자들이 밭과 바다를 경작하면서 경제권을 쥐고 있었거든. 헌데, 남자들은 하는 일 없이 큰소리만 쳤지. 그리고 4·3 사건을 겪으면서 남자가 많이 희생됐어. 그래서 여자들이 많아지니 일부 한량들은 부인을 두고 다른 여자를 넘 보기도 했지."

"그래서 그런 꼴 못 참는 부인들이 이혼을 요구했구나?"

"그래. 제주 남자들이 바람둥이라고 소문난 것도 그 때문이래."

"그럼 오빠도 그런 유전자 물려받았어?"

그 말에 용찬은 뜨끔했다. 조부가 사회주의 운동하다 일본으로 밀항한 일이며, 부친이 국가보안법으로 옥사한 자신의 가정사 때문이다. 그러나 용찬은 난감한 질문을 애련의 감정에 호소하며 얼버무리었다.

"난 아버지 없이 자란 아픔을 겪어봐서 그렇게 살진 않을 거야."

아픔이란 말에 해연의 표정이 숙연해지더니 더는 캐묻지 않았다.



해연은 다음날 서울로 돌아간다고 했다. 서울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집 전화번호까지 받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해연과 많이 친해진 것에 용찬은 가슴이 뿌듯했다.

이별을 아쉬워하며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해연네 집 앞에서 어슬렁거리던 웬 사내가 한참 노려보더니 인상을 쓰며 다가섰다. 해연이 위협을 느꼈는지 용찬의 팔을 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이라 생각했는데 종필이 똘만이였다. 그가 아는 척 인사를 했지만, 해연은 인상을 찡그리며 용찬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오빠 잘 가. 오늘 즐거웠어."

그리고는 황급히 도망치듯 대문을 열고 들어가 소리 나게 철문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그가 돌아서서 가는 용찬을 불렀다.

"야, 너 이리 와 봐."

용찬은 그 말을 무시하며 가는데 욕 소리가 들렸다.

"야 이 x새꺄. 쌩까냐?"

용찬은 돌이라도 날아올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며 돌아섰다.

"왜 그러십니까?"

"너 해연이랑 무슨 사이야?"

"그건 내 사생활인데 무슨 상관이세요?"

"허어. 이 자식 봐라. 종필이가 알면 너 맞아 죽어 새꺄."

"맞아 죽든, 밟혀 죽든 내가 당할 일이니 상관 마세요."

"야 임마, 종필이 중국 가면서 부탁받은 몸이라서 그런다. 왜? 꼽냐?"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그는 제압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만족한 듯 능글맞게 웃었다.

"너 앞으로 한 번만 더 해연이 만나면 대구빡을 뿌사 버린다이. 알겄냐?"

용찬은 그 말에 대꾸 않고 뒤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저 새끼가 대답도 없이. 저거. 저거. 야!"

뒤에서 소리가 들렸으나 용찬은 발걸음만 급하게 내디디었다.



식당 안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더니 펑! 소리와 함께 불길이 솟구쳤다
직감적으로 불이 났음을 알고 황급히 남자의 행방을 쫓아 골목 어귀를 돌았다
조명등 불빛에 드러난 얼굴은 분명 해연 아버지 장석규 씨였다





밤이 늦어서 길은 컴컴했다. 대룡반점 앞을 지나치는데 누군가 식당에서 나왔다. 무심결에 뒤돌아보았는데 그는 종종걸음으로 골목 어귀를 돌아 사라졌다. 잠시 후 식당 안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더니 펑! 소리와 함께 불길이 솟구쳤다. 용찬은 직감적으로 불이 났음을 알고 황급히 남자의 행방을 쫓아 골목 어귀를 돌았다. 그가 해연의 집 대문을 열며 슬쩍 주변을 살피고는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런데 대문 앞에 켜진 조명등 불빛에 드러난 얼굴은 분명 해연 아버지 장석규 씨였다.

'아니 이게 무슨 경우지? 자기 집에 불을 놓다니?'

가슴이 마구 뛰는데, '불이야'하는 소리가 들렸다. 달려가 보니 불은 이미 식당 전체로 번지고 있었으나, 용찬은 차마 가까이 가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보였다. 왕 사장은 허우적대며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고 리화 어머니는 허리를 잡고 말리고 있었다. 왕 사장은 기어이 부인을 뿌리치고 불타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고 리화 어머니는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울부짖었다. 한밤중 뛰쳐나온 동네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안절부절못했다. 그 중엔 해연네 가족도 있었는데, 장석규는 참 뻔뻔스럽게도 소방차가 왜 이리 늦게 오느냐며 화를 냈다.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소방차가 도착할 즈음에 왕 사장은 불길을 뚫고 진열했던 가보를 들고 나왔다. 손뼉 치며 환호하는 사람도 있었다.



용찬은 우두망찰 서서 부르르 몸만 떨다가 그 밤에 걸어서 고향집으로 갔다. 그리고 며칠을 비몽사몽 잠만 잤다.

악몽이 계속됐다. 꿈속에선 해연이가 자주 등장했고, 리화 어머니가 축하금까지 줬는데 모른 척한다며 원망하기도 했다. 무서운 얼굴의 장석규, 방화범 잡으러 왔다는 경찰, 금산이, 종필이, 리화, 왕 사장, 심지어 그날 용찬을 협박했던 사내마저 번갈아 나타나 용찬을 괴롭혔다.



"야이 이거 몇날 며칠 씩 무슨 잠이고? 야 그만 일어나라. 이모 와시녜."

어머니가 이불을 걷어젖히고 마구 흔들어서야 용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 밤낮을 잤는지 용찬은 묻지도 않았다. 땀이 베어 끈적한 냄새나는 몸을 씻으러 욕실로 갔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초췌해진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랐다.

샤워하고 나오니 이모가 걱정하는 표정으로 용찬을 쳐다보았다.

"무사 어디 아판? 얼굴이 반쪽 되어신게."

"그간 대학 시험 공부허젠 폭삭 속았주. 긴장이 풀려신지 먹지도 않고, 깨워도 자고 깨워도 자고. 원 이런 시상도 이시카."

어머니가 안도의 웃음을 지으며 저간의 사정을 이모에게 설명했다.

"축하한다. 이제 대학생이구나. 자 이거 얼마 안 되지만 학용품이나 사라."

이모가 두툼한 봉투를 내밀자, 리화 어머니가 준 봉투가 생각났다.

그건 돌려드려야 한다. 헌데, 차마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다. 지금이라도 가서 사실을 말할까? 그러자니 해연이가 눈에 밟혔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발설해선 안 된다는 결론을 짧은 순간에 내렸다.

"용찬아, 아직도 잠 안 깨어시냐? 고맙수댄 허라."

용찬은 생각을 떨쳐내려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뒤로 젖혔다가 이모가 내미는 봉투를 받았다.

"고맙습니다."

"몸이 약 허연 잠을 이겨내지 못하는 거 담수다. 언니 서울 가기 전에 좋은 거 하영 멕입서."

"게무로사.(그렇게 하기로서니) 독 쏠망(닭 삶아서) 내놓아도 먹어사 말이주."

그 말에 용찬은 내장이 꼬이는 소리를 들었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어머니, 밥 줘."

"이제야 정신이 돌아오는 모양이구나."

어머니는 안도하며 벌떡 일어서서 전복을 곁들여 만든 삼계탕을 덥혀 식탁 위에 놓았다. 용찬은 허겁지겁 먹는 데 열중했다.

이모는 보험 영업사원이어서 늘 많은 정보를 가지고 다녔다.

어머니와 이모가 나누는 대화를 그냥 흘려듣는 중에 대룡반점 화재 얘기가 나왔다. 용찬의 귀가 안테나를 길게 세웠다.

"그거 전기 합선으로 결론이 났젠 헙디다."

"하이고, 그 중국집은 어떵 헐 거라게?"

"게매 양(글쎄요), 그 화재로 장 사장은 돈 벌어수게."

"그건 무신 말?"

"그 건물에 보험을 하영(많이) 들어 놓아시난 돈 번 거 아니우까?"

그 말에 꾸역꾸역 넘기던 음식물이 목에 걸리더니 컥 소리와 함께 역류해 나왔다.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헙지지(덤비지) 말앙 천천히 먹으라게."

<강준 작가 joon44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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