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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있는 풍경 문학 도시를 가다] (9·끝) 문학도시 제주를 꿈꾸며
책과 문학 흐른다면 새로운 일상 담대히 헤쳐갈 수 있으리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0. 10.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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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 향토문화중장기계획
민선 6기엔 문화예술섬 전략
동아시아 문화도시에도 올라
문학진흥·출판·서점 조례도
멋낸 장식품 같은 문화 말고
진정성 있는 정책 실현돼야


"깊은 산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나침반 읽는 법을 배운 사람과 아닌 사람은 생존확률에서 크게 차이가 날 겁니다. 그리고 문학에서 얻는 삶의 진실은 우리를 진지하고 상식적인 사회적 존재로 가능하게 해줍니다."

지난 9월 제주에서 개막한 2020대한민국 독서대전. '코로나19 시대, 독서의 가치를 묻다'를 주제로 열린 독서컨퍼런스에서 정유정 소설가는 '가장 적극적인 생존행위, 독서'란 주제로 이같이 기조 강연했다. 랜선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해진 작가의 메시지는 나지막했으나 단단했다. 기나긴 전염병의 역사에서도 인간이 살아남은 건 책으로 깨우치고, 전달하고, 학습하는 이야기 능력을 키운 덕택이라고 했다.

제주민예총과 제주작가회의가 지난 6월 제주시 삼도2동 포지션민제주에서 열었던 4·3문학 아카이브 기획전. 사진=진선희기자

지난 봄과 여름에 제주를 시작으로 강원도 원주, 경기도 부천을 돌아봤다. 부천과 원주는 문화도시이면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네트워크에 차례로 가입한 지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역 출신 유명 문학인을 다수 배출했거나 화려한 문학인프라를 갖추진 못했으나 책 읽는 문화, 공공도서관 활성화 등 문학을 기반으로 시민들의 삶의 방향을 그려온 도시였다.

제주는 그동안 문화예술 중·장기 계획으로 도시를 가꾸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제주특별법을 근거로 2003~2011년 제1차 제주향토문화예술진흥 중·장기계획에 이어 2013~2022년 2차 계획이 만들어졌다. 민선 6기 제주도정은 '자연·문화·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란 표어 아래 2016년 '제주 문화예술의 섬 조성 전략'을 수립했고 2019년에는 그 후속으로 활성화 전략을 마련했다. 2016년에는 한중일문화장관 회의를 계기로 선정된 동아시아 문화도시에 제주가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엔 서귀포시가 다른 6개 도시와 더불어 지역문화진흥법에 따른 제1차 법정 문화도시가 됐고 제주시는 예비 문화도시로 지정됐다.

강원도 원주 박경리 작가의 옛집.

문화예술의 섬, 문화도시란 명칭이 낯설지 않지만 제주도 문화정책에 그것들이 바탕이 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제주도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2020년 새로운 10년, 더 큰 제주' 업무 계획을 보면 문화예술은 장식품으로 올려진 모양새다. 사회복지 예산이 22%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수 밖에 없다고 쳐도, 문화 예산이 존재감조차 없을 줄 몰랐다. 문화·관광 분야로 제시한 게 전체의 5%다. 2019년 제주도정이 이룬 주요 성과에는 문화 분야 실적이 없다.

제주 공공도서관 자료실.

이런 현실에서 문학은 문화정책의 뒷전에 있었다. 제주문학관 조성을 봐도 알 수 있다. 민선 5기 문화예술 부문 공약이었고 제2차 제주향토문화예술진흥 중·장기계획엔 전략 과제로 지방비 50억원을 들여 2015~2016년 완공하는 것으로 제시했다. 다행히 공립 제주문학관은 오랜 기다림 끝에 지난 1월 제주시 도남동 전체면적 2500㎡ 부지에서 첫 삽을 떴고 내년 개관을 목표로 국비를 포함 97억원 규모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제주 북촌리 너븐숭이 4·3유적지에 설치된 '순이삼촌' 문학비.

제주가 문학 분야 활성화 정책에 손을 놓고 있는 사이 2016년 문학진흥법이 제정됐고 문화체육관광부는 5개년의 제1차 문학진흥기본계획(2018~2022)을 내놓았다. 문학진흥 계획은 창조력의 원천이자 기초예술의 핵심으로서 문학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적 토대와 성장기반 구축을 위한 종합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나왔다.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사업, 작은 서점 살리기 작가 파견 지원사업, 지역 문학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행사 개최와 지원, 지역 문학단체와 문인들의 창작역량 강화 프로그램, 지역문학관 연결망 구축, 통일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이산 문학 활동 지원 등이 해당 계획에 담겼다.

제주에서도 제주도의원 발의 등을 통해 제도가 갖춰져 있다. 문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8년 2월 제주특별자치도 지역출판 진흥 조례, 4월엔 지역서점 활성화와 지원에 관한 조례가 제정됐다. 지난해 5월에는 제주특별자치도 문학진흥 조례가 생겼다. 이 조례엔 문학 진흥을 위해 매년 문학진흥 세부 시행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되어있다.

강원도 원주 토지문화관 전시실.

제주 실정에 맞는 문학진흥 계획과 별개로 기존 문학 인프라 활성화 정책이 필요하다. 공공도서관이 대표적이다. 제주는 지자체와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이 22곳(2019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이고 인구 100만명당 시설 수가 33.42개소로 전국 평균(21.23개소)을 크게 앞지른다. 1개관당 평균 도서자료 수도 11만5547권으로 전국 평균(10만1606권)을 웃돈다. 반면 공간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사서 직원 수는 1개관당 3.36명으로 전국 평균(4.37명)보다 적다. 전국 각지 공공도서관들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 시국에 존재감이 커진 공공도서관에 대해 제주도가 시설 리모델링, 인력 확충 등 예산 투입을 적극적으로 늘려야 한다.

경기도 부천 도심 중앙공원에는 수주 변영로의 '논개' 시비 등이 세워져 있다.

다시, 정유정 소설가의 목소리를 옮겨본다. "책은 코로나로 야기된 언택트 시대에 영향을 받지 않는 매체입니다. 인간은 공동생활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고독한 단독자입니다. 책은 단독자일 때 효용가치가 가장 높습니다. 책 읽기는 독자적으로 지식과 예술을 접하는 행위이기 때문이죠. 특별한 장소, 특정한 시간, 특수한 도구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것, 귀와 귀 사이에 걸려있는 둥근 물체, 머리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외부에서 주입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매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뛰어납니다." 새로운 일상을 담대하게 헤쳐갈 수 있는 시민은 책과 문학이 흐르는 도시에서 키워질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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