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딛고 피어난 어촌 소년의 꿈
우근민 제주도지사 당선자는 지난 42년 11월 우좌용 선생과 김종심 여사의 4남1녀중 막내로 구좌읍 종달리에서 태어났다.
네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고, 세화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엔 밭일과 물질로 생계를 꾸려 나가던 어머니마저 결핵으로 몸져 누웠다. 학비는 고사하고 생계마저 막막해졌다. 중학교 졸업 후 집안일을 돕다가 이듬해에 모 인문고교에 수석으로 합격했으나 학교재정의 어려움으로 장학금을 받을 수 없어 진학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하는 수 없이 다음해에 은사의 권유로 당시 성산수고에 입학, 3년간 장학금을 받아가며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우 당선자는 “나에게 부모는 제주인의 끈질긴 생명력의 상징으로 각인됐고 인내하며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철학의 원천이 됐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삶을 개척한 부모님에 대한 나의 존경과 사랑은 마르지 않는 샘으로 흐르고 있다”고 자부한다.
고교 졸업반 때 공군사관학교에 응시한 우 당선자는 신체검사에서 시력 미달로 떨어지자 육군 간부후보생 시험에 합격해 전방에서 소위로 근무하던 중 인생의 스승인 심흥선 장군을 만났다. 심 장군의 부관에서부터 심 장관의 총무처장관 시절 비서관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은 바늘과 실처럼 살아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육사동기이기도 한 심 장군은 3군단장과 합참본부장 육군참모차장 육사교장 합참의장 등을 거쳤다. 그 옆에는 항상 우근민이 부관으로 있었다. 특히 심 장군이 육군참모차장 재직시 그의 중매로 인생의 반려자인 박승련 여사를 만났다. 옆 참모총장실에 여군장교로 근무하던 박승련 중위는 그 후 평생의 반려자로서 즐거울 때나 어려울 때 늘 우 당선자와 함께 했다.
우 당선자의 정신적 후견인이었던 심 장군은 육군대장으로 예편, 스페인 대사로 발령받고 한국을 떠났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인연은 끝나지 않았다. 73년 총무처장관으로 중용된 그가 다시 우 당선자를 비서관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우 당선자는 9년 2개월간의 군 생활을 마감하고 관료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심 장관이 폐암으로 세상을 등지자 우 당선자에게는 외풍을 차단해 줄 울타리가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우 당선자는 “배경도 돈도 학연도 지연도 없어 매사 최선의 성실함으로 임했다”면서 “과장·국장 때 장관이 3일후쯤 보고해 달라는 일을 다음날 장관이 출근전에 서류를 갖다 놓을 정도로 열심이었고 그게 바로 내 공직생활의 황금률이었다”고 회고했다.
우 당선자의 이같은 노력과 성실성은 후에 빛을 발하기 시작, 인사국장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제주출신 정통관료 중 처음으로 차관급인 소청심사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고향을 떠난 지 30여년만인 91년 8월 제27대 제주도지사로 금의환향했다. 우 당선자는 재임시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과 관련한 시위가 끊이지 않자 농성현장으로 찾아가 설득하며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종합개발계획 수립 등 도정수행 능력을 인정받아 28대 도지사에 연임됐다.
그러나 지난 95년 6·27 지방선거에서 당시 집권당이던 민자당 후보로 첫 민선도지사를 노렸으나 무소속 신구범 후보에게 패해 쓴잔을 마셨다. 그렇지만 우 당선자에게는 패배가 다시 승리를 위한 기회로 바뀌었다. 야인시절 1년 6개월간의 남해화학 사장과 총무처차관을 역임하면서 절치부심의 세월을 보냈다. 남해화학 사장 재임시에는 만성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키고 단순 비료회사를 종합화학회사로 성장시켰다.
더욱이 총무처 차관시절에는 대통령취임준비위 실무위원장을 맡아 정부출범을 뒷받침하며 국민회의 인사들과 친분을 쌓게 됐다. 지금도 민주당 중진급 의원들은 당시 우 차관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다.
98년 3월 설욕의 기회는 다가왔다. 신구범 후보와의 후보 경선에서 깨끗하게 승부를 되돌렸다. 뿐만 아니라 경선불복으로 다시 재대결했던 신 후보를 월등한 표 차이로 누르고 민선 2기 지사가 됐다.
우 당선자는 IMF로 사회전반이 어려울 때 민선 2기를 떠맡았다. 이런 와중에서도 제주발전을 위한 국제자유도시특별법과 4·3특별법 제정 등에 노력을 기울인 결과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마침내 인생의 꽃을 피우기 위해 1백만 내외 도민들을 보듬어 안는 마지막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6월13일 두 사람간의 세번째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둬 라이벌전에 종지부를 찍었다.
또한 국제자유도시호의 순항으로 변방의 고장에서 세계중심 지역으로 탈바꿈 시키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1백10% 발휘할 때가 온 것이기도 하다.
이제 4·3특별법 제정으로 반목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것처럼 선거로 인한 도민간의 갈등도 우직한 뚝심과 신뢰를 바탕으로 슬기롭게 헤쳐나가리라 많은 도민들은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