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기획]'책읽는 사회' 아직은 먼길

[목요기획]'책읽는 사회' 아직은 먼길
  • 입력 : 2002. 08.08(목) 12:20
  • /사진=강경민기자 gmkang@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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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마음의 창'을 열자"

 21세기의 지식정보기반사회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는 과연 책을 권하고 있을까? 또 우리는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책을 통해 얻은 기본과 원칙을 토대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나가고 있을까?

 모방송국의 독서권장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우리 사회에서는 책을 읽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칭찬을 받을 정도로 독서라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인 듯 싶다. 현재 우리나라의 도서관을 보더라도 책읽기를 힘들게 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를 엿볼 수 있다. 예산, 인력, 시스템, 시설, 프로그램, 장서수 어느 하나를 보더라도 지역주민의 책읽기를 적극 도와주기에는 부족하기 그지없다.

 한국도서관협회 2001통계에 따르면 2000년도 공공도서관(420개관)의 전체 예산은 1천8백64억여원. 이중 인건비와 관리비가 각각 1천13억여원(54.4%), 6백15억여원(33.0%)으로 태반을 차지하며, 자료구입비는 2백35억(12.6%)으로 가장 적다.

 또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1관당 인구수는 무려 11만여명이나 된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28만8천여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은 인천 28만4천여명, 대구 21만1천여명 등 순이다. 제주지역은 그나마 1관당 인구수가 3만3천9백38명으로 가장 양호했다. 또 국민 1인당 장서수도 0.52권(제주지역은 1.09권)에 불과하다.

주민들의 주변 환경도 책읽기를 주저하게 한다. 주택가 주위에 비디오 대여점, 노래방, PC방, 비디오방, 식당 등이 난립하는데 반해 공공도서관이나 마을문고 등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미래의 주역을 키워내는 학교에서의 독서여건은 어떤가? 최근 대학입시는 학생들의 폭넓은 독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논술과 구술면접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일선 고교에서 학생들은 독서를 즐길만한 여유가 없다. 시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독서습관은 단시간내에 갖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개발원 이희수 연구위원이 지난 4월 전국 초·중등학교 도서관 1만1백72곳을 대상으로 학교도서관 실태를 조사한 결과 1일 평균 학교도서관 운영시간은 초등 4.2시간, 중학교 2.7시간, 고등학교 3.6시간으로 나타났다. 최소한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 언제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도서관이 하루에 고작 3시간반정도만 열려 있는 셈이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은 초등 9%, 중학교 7%, 고등학교 6%로 상급학교로 갈수록 도서관 이용률이 떨어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결국 이미 도입된 구술면접 및 논술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고교에서는 명저들의 요약본을 공부하거나 미리 갖가지 예상질문에 대한 정답안을 만들어 암기하는 교육이 이뤄질 수 밖에 없다. 순간적인 기교로 논술에 대비하는 셈이다.

 지난 4월 제주도교육청이 교원 5백명과 초·중·고교생 1천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독서 설문조사에서도 학생들은 응답자의 49.2%가 학교도서관 이용을 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는 ‘읽을 책이 없다’(33.3%), ‘책빌리기가 힘들다’(19.0%), ‘닫혀있다’(15.8%), ‘독서지도나 상담을 하지 않는다’(14.6%) 순이었다. 학교도서관은 장서부족 등 열악한 여건에다 운영마저도 제대로 안돼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풍부한 자료를 갖춘 도서관이 없으면 청소년의 다양한 사고를 자극하는 자료제시형, 주제탐구형, 토론수업 등 열린 교육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도서관은 학생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교사들 역시 학생 지도를 위해 도서관과 전문사서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즉 교사들의 연구를 위해서도 학교도서관은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교사와 학생들 모두 다양한 자료를 활용할 수 있을 때 상호작용에 의한 능동적인 수업과 학습활동이 가능한 것이다.

 학교도서관의 부실 이외에 일선 교사와 학생들은 입시부담을 독서의 장애요인으로 꼽는다. 도교육청 설문조사에서도 응답학생의 절반이상(54.2%)이 독서를 가로막는 요인이 ‘학과공부 때문’이라고 말했다. 책읽기는 다양한 창의력과 적응력을 길러준다고 하지만 현행 선발시험이 학생들의 다양하고 풍부한 독서능력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 적어도 일선학교에서 만큼은 독서와 학과공부는 별개인 셈이다.

 이와 관련 제주시내 모중학교 국어과 담당교사도 “고입이 내신제로만 적용되던 지난 2년동안 학생들에게 교과서 이외의 책을 읽혀주고 다양한 독후활동을 통해 독서에 대한 재미를 스스로 깨우치도록 했다”고 말하고 “그러나 선발시험이 부활되면서 그런 활동들이 지금으로선 눈치보일 수 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뿌리와 줄기를 튼튼히 하지 않고 오직 열매만을 기대하는 교육제도와 우리 사회의 주변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올바른 책 읽기 문화는 정착되기 힘들 것이다.

/윤보석기자 ysbu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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