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기행]장맛의 추억
투박해도 정겨웠던 추억의 '메주'
  • 입력 : 2007. 12.15(토) 00:00
  • 문미숙 기자 msmoo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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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내촌에서 전통 장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는 어린이와 학부모. 햇콩을 삶아 메주를 띄운 뒤 담그는 전통 장을 이용한 음식은 밥을 최고의 보약으로 만들어주는 일등공신이었다. /사진=강희만기자

햇콩 삶아 다진 메주 띄우면 간장·된장 탄생

쌈장·된장찌개 지친 입맛 깨워주는 일등공신



맛있고 좋은 먹을거리들이 풍족해진 요즘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도 구수한 맛을 떠올릴 때면 생각나는 전통음식 가운데 조상의 지혜가 잘 녹아있으며 우리의 정서를 담고 있는 식품엔 뭐가 있을까? 물론 사람마다 제각각의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지난주 이 코너에선 한겨울 반찬의 으뜸인 '김장'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았는데, 이번엔 '된장' 속으로 추억여행을 떠나본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먹고 먹어도 질리지 않는, 우리네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된장. 된장의 구수한 맛은 사람들로 하여금 아스라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할인매장에서 장을 구입해 먹는 시대라 장을 직접 담그는 가정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농촌에서는 일부가 남아있다고 하지만 손꼽을 정도다. 하지만 예전엔 겨울이면 어느 가정이나 늦가을 수확한 햇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잘 띄워서 간장과 된장을 만들었다. 장맛이 그 집의 기운을 좌우한다고 할 정도로 장은 소중한 존재였다.

메주를 담그는 날이면 어머니는 새벽부터 분주했다. 한 알 한 알 잘 골라 전날 저녁부터 물에 담가 충분히 불린 흰콩을 커다란 가마솥에 장작불로 푹 삶으면 콩 익어가는 냄새가 좋았다.

푹 삶아진 콩은 잘 으깨는 게 중요했다. 물기를 뺀 콩을 커다란 양푼에 쏟아낸 다음 버선을 겹겹이 신어 밟아 다지거나, 아니면 깨끗한 자루에 담아 밟았다. "앗, 뜨거워!"란 소리가 절로 나올만큼 뜨거운 콩은 발바닥 밑에 깔려 곱게 으깨졌다.

다음 순서는 으깬 콩을 직사각형 모양으로 빚는 일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메주는 볏집으로 엮어 통풍이 잘되는 헛간 같은 곳에서 주렁주렁 매달아 말렸다. 메주가 쩍쩍 갈라질 때까지 충분히 띄우는 과정을 거쳐 소금물에 넣어 장을 담근다. 장독대 안에는 숯과 고추를 함께 넣었는데, 부패를 막고 장의 발효를 돕는 기능 때문이다. 장맛이 충분히 우러나게 숙성과정을 거치면 국물은 간장으로, 건더기는 항아리에 꼭 눌러 담아 된장으로 거듭 태어나게 된다. 음식맛을 내는 중요한 조미료인 된장과 간장은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으로 그렇게 탄생했다.

서구식 음식문화와 패스트푸드가 밥상을 점령한 오늘날이지만 된장은 우리의 밥상 한 켠을 꿋꿋이 지키고 있다. 또 항암효과 등 뛰어난 효능과 우수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콩은 그냥 먹었을 때보다 된장, 특히 청국장으로 먹었을 때 소화흡수율이 뛰어나고 단백질 섭취도 월등하다고 한다.

고추장 한 술 푹 떠넣고 마구 비벼먹는 비빔밥, 쌈장을 듬뿍 넣은 쌈밥, 보글보글 끓는 구수한 된장찌개와 속시원한 된장국이야말로 지친 몸을 깨워주고, 밥을 최고의 보약으로 만들어주는 일등공신이 아닐까?

제주 바람·햇살에 깊어가는 장맛

'고내촌'에서 제주콩으로 전통의 맛 재현

일반인 대상 장 만들기 체험행사도 운영


▲김성옥씨의 일터인 '고내촌'에서 생산되는 전통장류는 모두 제주콩만을 원료로 한다. 거기에 제주의 맑은 공기와 고내봉 소나무의 솔잎을 이용해 만든다. /사진=강희만기자

제주시에서 서쪽으로 애월 중산간도로를 따라 20분 남짓이면 닿는 고내리 에 자리한 ' 고내촌'은 제주의 전통 장맛이 익어가는 곳이다.

고내촌에 들어서자 은은한 솔향기와 함께 촌장 김성옥씨(58)가 맞아준다. 그리고 수 백개의 장독대가 눈에 띈다. 김씨는 제주땅에서 나는 재료로 정직한 전통장류를 만들어 내겠다는 일념으로 2005년 창업해 장과의 씨름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30년간 가정교사로 근무하다 퇴직한 김씨의 일터인 고내촌에서 생산되는 전통장류는 모두 제주콩만을 원료로 한다. 그리고 거기에다 제주의 맑은 공기와 제주의 황토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고내봉 소나무의 솔잎을 이용해 만든다. 특히 된장은 제주산 콩과 비금도 정제염을 사용해 옛날 전통방식 그대로 단지에 담아 숙성시킨다. 보리고추장은 제주산 태양초를 빻아 보리를 첨가해 고내촌만의 비법을 이용해 만든다. 제주 콩과 비금도 정제염을 사용해 1년여간 자연숙성시킨 간장맛도 일품이다.

이렇게 생산된 제주전통 장맛은 전국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제주가 발효식품의 최적지예요. 일조량이 길고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날이 거의 없잖아요. 미생물이 잘 자라기에 더없이 좋은 여건을 갖췄어요. 다른지방 소비자들한테도 반응이 괜찮은데, 제 정성과 더불어 제주의 청정 이미지 덕을 보고 있는 셈이죠."

김씨의 노력덕분에 '고내촌'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지난 5월 제주도 중소기업 공동브랜드인 '제주마씸' 상표를 획득했다. 또 지난 7월엔 대한민국 우수특산품 전시회에 '송화된장'을 출품해 대상을 받기도 했다. 지역 자원을 활용해 특화산업으로 발전시켜 지역경제 활성화와 소득증대 도모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은 것이다.

고내촌에선 올해부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전통장류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10명 이상의 단체는 미리 신청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마침 지난 9일 고내촌엔 한국관광공사 제주권협력단 등이 공동개발한 '제주마씸 & 그린투어 1.5 체험관광 프로그램'을 체험하려는 도내 초등학교 어린이와 학부모 80여명이 찾았다.

전통가마솥에서 삶아 다진 콩을 네모난 틀에 채워 예쁘게 빚느라 정신이 없기는 어린이나 학부모나 한 가지였다. 한해진씨(구좌읍 한동리)는 "어릴적 집에서 어머니, 할머니가 메주만들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커다란 비닐포대에 삶은콩을 넣어 밟곤 했는데, 삶은 콩을 많이 먹으면 배가 아프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시곤 했죠." 허지선(한동교 5) 어린이는 "오늘 메주를 만드는 체험이 특히 재미있었어요. 평소 좋아하는 된장찌개의 구수한 맛이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걸 알게 됐어요"라고 했다.

참가자들은 메주 만들기에 웰빙요리 소스로 쓰이는 강된장을 직접 만들어보고, 나눠준 병에 담아가기도 했다.

김씨는 오늘도 자연이 준 그대로를 순응하며 그 옛날 어머니의 손맛으로 만들던 제주의 전통장맛을 지켜가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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