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잇는사람들](28)부녀 대장장이 김태부·혜영씨

[代를잇는사람들](28)부녀 대장장이 김태부·혜영씨
"큰 딸은 든든한 지원군"
  • 입력 : 2008. 08.30(토) 00:00
  • 문미숙 기자 msmoo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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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 혜영씨가 아버지 김태부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벌겋게 달구어진 쇳덩이를 두드려 가며 낫을 만들고 있다.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40년 넘도록 차가운 쇠 녹이기 한길
이젠 큰 딸이 아버지 기술 이어받아


번듯한 간판 하나 없다. 나지막한 슬레이트건물 양철문에 쓰여진 '제주전통대장간, 호미·낫'이란 글씨가 대장간임을 알려줄 뿐이다.

양철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요란한 "땅 땅" 망치질 소리와 곳곳에 쌓인 호미·낫 등 농기구 너머로 망치질의 주인공인 김태부씨(64)가 눈에 띈다.

그는 화덕에서 벌겋게 달궈진 쇳덩이를 집게로 끄집어내 모루 위에 올려놓고 힘차게 내리치기를 반복한다. 그러자 서서히 낫의 모양을 잡아간다. 그리고 나서 물통에 살짝 담그는 담금질 후 그의 아내가 그라인더로 날을 세워주자 예리한 낫이 완성된다.

그가 대장간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한 건 스무살 무렵이었다. 어렵던 시절 한림의 한 대장간에 들어가 대장일을 배운 게 불·쇠와 씨름하는 외길 인생으로 이어졌다. 지금의 서사라 사거리 위쪽에 대장간을 차린 건 1982년이다.

그리고 큰 딸 혜영씨(40). 5년간의 서울생활을 정리한 스물여섯부터 아버지 일을 돕기 시작한 게 자연스레 기술을 전수받는 단계로 이어지고 있다. 어릴 적 쇠를 달구고 메질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이가 이제 그 아버지 나이가 돼 직접 호미만드는 일을 제법 해낸다. "딸 아이가 꽤 손재주가 있다"는 그는 다른 자식보다 공부를 많이 못시킨 게 늘 미안했던 큰 딸이 든든한 지원군으로 곁에 있어주는 게 미안하고 한편으로 대견스럽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쇠를 불에 달구고 메질해서 호미, 낫을 만드는 걸 보고 자랐어요. 어머니는 물건을 장에 내다파느라 바빴고, 아버지 옆에서 허드렛일을 도와드리면 사주시던 자장면맛이 꿀맛이었는데…."

김씨의 대장일은 아침 6시부터 시작해 얼추 오후 5~6시는 돼야 끝난다. 그리고 제주시 오일장에서도 낫과 호미를 팔고 날을 벼리는 김씨 부부를 만날 수 있다. 오일장날 대장간은 혜영씨가 지킨다.

"젊었을 적엔 우리집에도 종업원이 5~6명이 돼 쇳덩이를 일일이 자르고 불에 달궈진 쇠를 내려치는 메질을 했어요. 요즘은 낫은 내가 본뜬 모양대로 공장에서 만들어내 섬세하게 메질하고 담금질하는 일을 수작업으로 해내죠."

기자가 대장간을 찾은 날에도 호미를 사러 오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다. 제주의 전통적 벌초시기인 음력 팔월 초하루를 앞둬서 더욱 그랬다.

오랜 단골손님서부터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무디어진 날을 벼리기 위해 왔다는 낯익은 단골손님이 들고온 낫엔 '김'이란 작은 글씨가 선명하다. 자신이 만든 물건은 바로 알아보는 게 대장장이지만 호미에 일일이 낙인을 찍는 건 어디에 내놔도 자신있다는 장인의 자존심인지 모른다. 26년 단골이라는 한 철물점 주인은 물건이 좋아 한 번 시작한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김씨의 대장간은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별로 없다. 쉽지 않은 일이다. "빠듯했지만 쇠 만지는 일로 다섯 아이들 공부시키면서 일곱 식구가 그럭저럭 먹고 살았어요. 앞으로 한 30년은 더 망치질을 하지 않겠어요?"라는 말로 평생 대장장이로 살아가겠다는 김씨. 평생을 차가운 쇠를 녹여온 열정과 좋은 연장을 만들겠다는 정성에 기억하고 찾아주는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자신감이자 사명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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