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대학으로 간 미술장식품

[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대학으로 간 미술장식품
  • 입력 : 2009. 01.06(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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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문여는 제주대병원
제주대 교수 작품 편중
도내 18점중 14점 선정


한 해가 기울어가던 무렵이었다. 전업작가인 한 미술인이 침통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오는 3월 제주시 아라동에 새롭게 문을 여는 제주대학교병원 미술장식품 설치에 관한 일이었다. 건물에 들어서는 조각, 회화 등 미술장식품의 대부분을 제주대학교 교수진이 맡는다는 거였다. 그럴 수 있느냐고 했다.

건축물에 대한 미술장식품 제도는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건축비 1%를 떼어내 미술품을 설치하도록 권고했던 것이 여러차례 변화를 거쳐 1995년부터 의무사항으로 시행되고 있다. 건축물의 연면적이 1만㎡이상이면 회화, 조각, 공예, 사진, 서예, 벽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품을 설치해야 한다.

미술장식품 제도는 미술인들의 '창작기회를 확대하고 순수문화예술을 진흥함으로써 삭막한 도시환경을 개선'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모처럼 작품 거래가 이루어지는 이 제도는 그동안 적지않은 미술인들에게 상처를 안겨줬다. 공정한 방식을 통해 미술장식품이 설치되기보다는 '끼리끼리' 작가 선정이 이루어진 일이 있기 때문이다.

제주대학교병원도 다르지 않다. 신축 건물에 설치되는 미술장식품 19점중 18점이 제주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은 고무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중 12점이 제주대학교 현직 교수 12명의 작품이다. 1점은 전직 제주대 교수가 맡았고, 1점은 제주대 출강하는 작가의 작품을 선정했다. 4점은 전업작가에게 돌아갔다고 하지만 사실상 제주대학교에 몸담은 이들의 작품을 모두 밀어줬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건축주는 시공사에 미술장식품 설치건을 일임했고, 이는 다시 서울 모 화랑의 손에 맡겨졌다. 갤러리측은 제주대학교병원을 제주대 구성원들만 이용하는 병원으로 알았는지, 이 대학 관련학과 교수들의 작품을 무더기로 뽑았다. 이들 미술장식품 설치에 투입되는 비용은 4억3천만원. 도내 건축물의 미술장식품 비용으론 적지 않은 액수다.

새해 벽두 제주도에 설치된 미술장식심의위원회에 제주대학교병원 미술장식품이 안건으로 올랐지만 '왜 제주대 교수 작품이 이렇게 많이 선정되었는가'란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미술장식의 가격, 예술성, 건축물과의 조화,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심의하는 위원들로선 제주대 교수들의 '양심'을 내심 묻는 것으로 그쳤으리라. 이날 회의가 몇몇 작품에 대한 색채, 크기 등을 거론하며 이들에 대한 재심의를 결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이유다.

창작의 기회를 널리 제공하기 위해 시행된 이 제도가 이미 안정된 기반을 다진 대학으로 쏠리고 있다. 미술장식심의위원들의 작품이 선정되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 가장 많은 회원을 가진 미술협회도지회에서는 투명한 미술장식 제도 운영을 위한 목소리가 나올 법 하지만 웬일인지 잠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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