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손으로 보는 달리의 그림

[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손으로 보는 달리의 그림
  • 입력 : 2009. 11.17(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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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의 현대미술관
평면회화를 입체로 제작
시각장애인 관객에 제공


오후 5시. 벌써 바깥이 어둑해져 있었다. 불빛이 없으면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이 곧 다가올 때다. 지난 10일 스웨덴의 스톡홀름 현대미술관(Moderna Museet)을 돌아봤다. 컴컴한 어둠 아래 손을 더듬으며 무언가를 찾을 때처럼, 그곳에서 그림을 그렇게 만났다. 그림을 눈이 아닌 '손으로 보는' 경험을 했다.

미술관에선 지금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기괴한' 예술가의 작품을 보기 위한 시민과 관광객들로 전시실은 꽤나 붐볐다. 접이용 작은 의자에 모여앉아 전시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는 풍경을 곳곳에서 봤다.

만일 시각장애인이 미술관을 찾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장애인은 그림을 볼 수 있지만 시각장애인은 그렇지 못하다.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달리의 그림이 어떤 모습인지 상상하곤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것일까.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에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령, 달리가 1933년 캔버스에 유채물감으로 그린 '빌헬름 텔의 수수께끼'를 볼 수 있다. 평면 회화를 입체 작품으로 재현해놓은 시각장애인용 자료가 있어서다.

장애인들은 그림의 일부를 옮겨놓은 조형물을 세심하게 만지며 해설사의 설명을 듣게 된다. 궁금증이 일면 묻고 대답하기를 몇번이고 반복한다. 장애인을 돌려 세워놓고 손가락으로 등 뒤에 모형을 그려가며 해설이 이루어질 때도 있다. 현존 작가의 작품은 더러 직접 만지게 한다. 보수가 필요하면 작가에게 요청할 수 있으니까.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새롭게 탄생한 달리의 입체 작품은 표면이 반들거렸다. 지난 9월부터 전시가 시작됐는데 그만큼 적지잖은 장애인들이 미술관을 찾았다는 방증일 게다.

미술관측에선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 같은 곳에서 시각장애인용 관람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시각장애인들이 그림을 만날 수 있는 사례는 드물다. 복지국가 스웨덴의 명성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장애인의 예술 접근권을 애초부터 차단시켜 놓는 우리의 문화공간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장애 유형이 있음에도 휠체어장애인을 위한 통로를 만들고, 화장실을 지은 것으로 장애인 시설을 갖췄다고 여기는 일이 많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안내판 하나 제대로 만든 문화공간을 보기 어렵다.

문화예술은 무엇이 더 우월하고, 무엇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느 분야에 비해 다양성이 공존한다. 그같은 특징 때문에 문화예술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데 어울릴 수 있는 것이다.

원하는 장애인들에겐 예술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언제든 제공되어야 한다. 문화공간이 비장애 성인 관람객만이 아니라 어린이,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이어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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