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유산을 찾아서](1)프롤로그

[해양문화유산을 찾아서](1)프롤로그
바다가 뿌려놓은 유무형 문화자원에 제주섬의 생애
  • 입력 : 2010. 01.01(금)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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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건입동 칠머리당에서 행해지는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유네스코는 영등굿에 삶의 터전인 바다에 대한 제주도민의 존경의 마음이 드러난다고 평했다. /사진=강경민기자 gmkang@hallailbo.co.kr

바다가 있어 내륙 지역과 빛깔이 다른 숱한 문화유산 낳아
파도소리 듣듯 무심히 지나쳐온 해양유산 보배처럼 꿰어야


제주기행문 '남명소승'을 남긴 16세기 선비 임제가 읊은 한시에 이런 대목이 있다. '큰 바다 망망히 하늘과 맞닿았는데 온 고을의 백성과 만물은 거기에 두둥실 떠있구나.' 제주를 유람했던 임제는 섬이 주는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제주바다의 파도소리가 밤낮으로 하루종일 물결소리 내며 성(城)을 흔든다고 했다. 제주 사람들은 심상으로 듣지만 객지 사람의 심사는 뒤숭숭하다면서.

바다를 떼어놓고 제주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섬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바다가 있다. 파도 소리와 함께 눈을 뜨고 잠을 청했던 제주 사람들은 바다에도 밭을 뒀다. 화산섬 거친 땅에서 먹을 거리를 키워냈듯 바다밭을 드나들며 일상을 이어갔다. 바다에서 아이들이 자랐고, 생의 한 고비를 넘겼다.

# 삶의 터전인 바다에 대한 존경 표현

지난해 '표류의 역사, 제주'에 이어 다시 제주바다로 눈을 돌리고자 한다. 유배인이 눈물을 머금고 건넜던 바다, 바람을 타고 낯선 땅의 사람들을 데려온 바다에만 까닭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바다는 그 너른 품처럼 수많은 사연을 낳았다. '해양문화유산을 찾아서'바로 그 제주사람들이 바다에 뿌려놓은 이야기를 좇는 일이 될 것이다.

제주 바다에 흩어진 숱한 유무형의 유산들은 곧 제주의 역사를 말해준다.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그 너머 오래전 사람들의 삶이 짠내음나는 해양 유산에 담겨있다.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에 복원된 옛 등대(도대불).

2009년 세계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이름을 올린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유네스코는 칠머리당영등굿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제주도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구현시키고 삶의 터전인 바다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존경의 표현이다." 제주는 바다가 있었기에 내륙 지역과 빛깔이 다른 문화유산을 탄생시켰다.

제주엔 '소곰빌레'가 있다. 소곰은 소금을, 빌레는 드넓은 암반 지대를 뜻하는 제주어다. 제주는 소금이 귀한 지역이었다. 옛 사람들은 바다에서 소금을 구했다. 바닷물을 길어다 부은 뒤 햇볕과 바람에 수분을 증발시키는 등 지난한 과정을 거쳐 소금을 얻었다. 모래 소금밭, 돌 소금밭 등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소금 제조가 이루어졌다.

해안가의 물통은 어떤가. 용천수는 식수가 되기도 하고, 빨래나 목욕용으로 쓰였다. 제주의 여인들은 어릴 적부터 물허벅을 지고 물통에 가서 용천수를 길어 날랐다. 한 평생 중산간에 사는 제주 여인이 져나른 물의 양을 합치면 1000여톤에 이르고 그 거리는 지구 몇 바퀴를 돌고 남는다는 말이 있다. 바다는 때때로 고통의 다른 이름이었다.

마을 포구에는 등대가 있다. 흔히 '도대불'로 부르는 옛 등대다. 일제강점기 해안마을에 등대가 여럿 세워졌다고 알려졌는데 방사탑형, 굴뚝형 등 그 모양이 각기 다르다. 고기잡이 나간 배가 해질 무렵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등대에 불을 켜놓았다. 비바람속에도 바닷길을 향해 자그만 등대불을 피워올렸던 제주인들의 마음을 기억할 때다.

돌로 쌓아놓은 성(城)도 있다. 바다를 이용해 침입하는 적들이 상륙하기 좋은 지형이 많은 제주에서는 예로부터 해안에 방어벽을 만들었다. 환해장성이다. 돌그물도 보인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이용해 고기떼를 가둬놓고 잡을 수 있게 조성된 곳이다. 지역에 따라 원, 개로 불린다.

해녀의 공동체 문화와 인연이 깊은 불턱도 남다르다. 마을마다 차이를 보이는 자리돔 잡는 기술, 미역을 캐는 방법에도 바다를 헤치고 살아가는 제주 사람들의 생애가 배어난다.

#속도 더딜뿐 하나둘 옛 모습 잃고 있어

이들 유적만이 아니라 제주 바다는 더 많은 유산을 낳았다. 하지만 세월의 변화를 겪으며 이들의 상당수는 옛 모습을 잃었다. 옛 등대만 해도 몇 군데 남아있지 않다. 북촌리, 고산리, 김녕리, 우도, 서귀포시 대포동, 보목동 등에서 그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다. 소금밭, 물통, 환해장성 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포구를 보수하면서 없애버렸다. 해안도로를 내면서 두 동강 나거나 원형이 바뀌었다. 환해장성처럼 제주도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경우에도 그 속도가 더딜 뿐, 이들 유산은 지금 가쁜 숨을 쉬고 있는지 모른다.

'해양문화유산을 찾아서'는 바다가 빚어낸 제주섬의 의미있는 자원을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지면이지만 그것들이 사라져가는 현장을 확인하는 시간도 될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파도소리로 뒤덮인 해양문화유산 하나하나에 얽힌 스토리를 끌어내는 일이 필요해보인다.

바다는 우리사는 곳의 7할을 거뜬히 차지한다. 수만년간 인류가 밟고 서서 '지배'해온 육지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바다다. 혹자는 말한다. 육지는 더 이상 삶의 공간, 생명의 공간일 수 없다고. 지구 표면적의 70%가 넘는 바다야말로 새로운 공간이요, 자원이요, 산업이요, 생명이라고. 바다는 곧 미래다.

근래 해양문화유산을 돌아보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옛 등대를 다시 세우고, 돌그물을 손질하는 마을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복원 방식을 두고 우려섞인 목소리도 있지만 해양콘텐츠 개발이 다양하지 못한 지역 현실에서 이들의 작업은 새삼 풍부한 바다 유산에 주목하게 만든다.

섬이라는 특성으로 일찍이 해양도시의 면모를 갖췄으면서도 제주 지역에 흩어진 해양문화유산에 대한 조명은 부족했다. 파도소리에 심상했듯 바다에 서면 종종 눈에 걸리는 소곰빌레, 옛 등대, 모래밭, 물통, 환해장성 등을 무심히 지나쳤다. 바다가 있어 제주문화유산이 한층 풍성해졌음을 오래도록 잊고 지냈다. '해양문화유산을 찾아서'를 통해 그 망각의 시간을 기억의 역사로 되돌려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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