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규 칼럼]월드컵, 그리고 6월의 기억들

[강문규 칼럼]월드컵, 그리고 6월의 기억들
  • 입력 : 2010. 06.15(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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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기억속의 6월은 곰팡이 냄새와 함께 다가온다. 화사한 봄날이 잠깐 머물다 간 자리에는 어느새 장마의 눅눅한 습기가 스며들었다. 그 때면 벗들과 들판을 누비며 '인동고장'을 따 빨아먹거나 청미래넝쿨의 웃자란 순을 꺾어 먹었다. 6월은 때로 뜨거운 태양과 함께 왔다. 그 때는 현충일을 전후해 농번기 방학이 있었다. 방학이면 해방감을 느끼며 기뻐할 일인데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농사에 일손이 모자란 터라 뙤약볕 아래서 호미를 들고 보리나 유채를 베며 긴 하루를 보내며 방학이 어서 끝나기를 고대했다. 그래서 청소년기 6월의 앨범은 대부분 우울한 색조(色調)의 그림들로 채워져 있다.

지난 주말을 보내며 또 다른 6월을 체험했다. 토요일 아침 사려니숲길로 갔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많은 탐방객들이 몰렸다. 그곳에서 지인을 만나 숲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숲에는 목향이 베어나왔다. 안개가 끼었지만 오히려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진청색의 한라수국이 간혹 눈에 띄었다. 이튿날에는 숲속의 작은 음악회도 예정돼 있다. 그 길을 걸으며 어릴적 숲길을 생각했다. 숲은 집을 짓기 위한 목재를 얻거나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땀흘리며 찾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극히 평화롭고 여유있는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며 걷거나 음악을 감상하며 즐기는 공간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삶의 여유와 기쁨이 우리 주변에도 펼쳐지고 있음에 감사해 했다.

저녁에는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한 대한민국과 그리스전이 열렸다. 아내와 함께 제주시 애향운동장에 마련된 거리응원에 참가 했다. 작은 베낭에 따뜻한 커피와 캔맥주, 안주 등을 담고 서둘러 나갔는데 이미 운동장 절반이 인파로 채워지고 있었다. 옆에 앉은 젊은 가족들과 간식과 커피를 나눠 마시며 즐겁게, 그러나 힘차게 "대~한민국"을 외치며 월드컵을 즐겼다. 가랑비가 내렸지만 비옷을 걸치고 태극전사들의 활약에 환호했다. 태극전사들의 캡틴인 박지성선수의 골은 그가 AC밀란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었던 명장면을 연상시켰다. 소 뒷걸음 치다 쥐를 잡는 것과 같은 골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걸출한 스타가 정교(精巧)하게 만들어낸 아름답고 빼어난 작품이었다.

그리스전을 보며 초등학교 시절 축구선수로 뛰었던 기억이 겹쳐졌다. 연습기간은 늘 배가 고팠다. 간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해서 연습이 끝나면 고구마서리를 하거나 무를 캐다 먹었다. 유니폼이 없어 하얀 런닝셔츠에 종이로 넘버를 써붙였는데 비가 오면 먹물이 번져 얼룩졌던 일도 떠오른다. 연습 때는 운동화 대신 고무신을 짚으로 묶어 공을 차기도 했다. 시합 전날 어머님이 오일장에 가서 운동화 한 켤레 사다가 주었다. 그런데 새 운동화를 신고 달렸더니 금새 물집이 생겨 고통스러웠던 일도 새롭다. 60년대의 모습은 이처럼 궁핍하고 초라했다.

그리스전이 끝난 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어느 감독은 태극전사들이 오만할 정도로 게임을 장악했다고 했다. 월드컵에서 유럽팀을 지배할 정도로 태극전사들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한 것이다.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히딩크감독이 선수들에게 축구를 즐기라고 했을 때 위화감을 느꼈었다. 얼마나 중요한 경기인데 즐기라고 하다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르헨티나전을 앞두고 허정무감독도 선수들에게 시합을 즐기라고 주문하고 있다. 우리 축구 수준도 어느새 세계 강호(强豪)들과 어깨를 견줄 정도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태극전사들의 도전은 계속된다. 그래서 이제 우리들 6월의 앨범은 보다 화려하고 격조높은 색채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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