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튀는 논술학교](5)통합교과논술을 위한 학습방법-(1)사고력을 향상시키자(①, ②)

[톡톡튀는 논술학교](5)통합교과논술을 위한 학습방법-(1)사고력을 향상시키자(①, ②)
남들과 같은 방향으로 이해하려는 태도 지양해야
  • 입력 : 2010. 07.14(수) 00:00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통합교과논술 능력은 사고력에서 갈린다. 날카로우며 깊고 폭넓은 사고력을 갖고 있어야 문제의 현상과 속성을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으며 , 창의적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① 다양한 관점을 지녀라

남과 다른 생각은 다양한 관점에서 비롯된다. 누구나 다 그렇다고 여기는 것이라도 얼마든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할 수가 있다. 우리가 통념이나 단선적 사고에 의존한다면 새로운 차원에서 대상을 이해할 수가 없다. 기존의 사고방식을 깨고 새롭게 사고를 해야 한다. 연세대학교의 '다면사고형 논술'에서 '다면사고'란 말이 바로 대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파악하고 전체적으로(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사고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위의 그림으로 보자. 쌓기나무가 5층으로 쌓여있다. (1)은 위에서 바라본 것이고, (2)는 정면에서 바라본 것이며, (3)은 옆에서 바라본 것이다. 그 평면도가 오른쪽과 같이 되어 있다면 쌓기나무를 쌓아올린 탑은 뒤에 다른 쌓기나무들이 하나도 숨겨져 있지 않은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평면도 (1)과 (2)와 (3)을 동시에 봐야 왼쪽과 같은 형태의 쌓기나무탑을 연상할 수 있다. 만약에 위의 평면도 (1), (2), (3)에서 어느 한 가지만 제시되었을 때는 쌓기나무탑의 형태를 추측할 수가 없다. 이는 다양한 관점으로 대상에 접근해야 그 대상을 제대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다음의 예를 보자.



서울에 살고 있는 어떤 집 할아버지가 시골 작은집에 내려온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작은집 식구들은 그 할아버지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온다는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할아버지가 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 때 식구들은 모여앉아 할아버지가 왜 지금까지 아무 소식도 없이 나타나지 않는가에 대해 몹시 궁금해 합니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서로 나누는 얘기가 바로 상상이라 그겁니다. 할아버지가 비행기를 타고 오다가 북한에 납치된 거라고 어린 손자가 말합니다. 그러나 그 손자의 말은 너무 황당한 것이라 식구들은 들은 척도 안 합니다. 그 시골까지 비행기 노선도 없을뿐더러 아홉시 뉴스에도 그런 사건은

없었기 때문에 그 얘기는 그저 황당한 공상이라는 겁니다. 즉 개연성이 전혀 없는 거지요. 그 집의 대학생이 말합니다. 할아버지는 친구를 좋아하니까 어디쯤 오다가 버스에서 내려서 지금쯤 술 한 잔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 어디쯤 할아버지 친구가 있다는 근거와 평소 술을 좋아하는 할아버지의 얘기가 그 추측에 힘을 싣습니다. 물론 개연성이 충분하니까 소설이 될 수 있는 상상이긴 합니다. 그러나 소설에서 필요로 하는 상상은 술 마시는 할아버지보다 조금 엉뚱한 구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개연성이 준비돼 있을 때라야 그 상상은 빛을 본다는 겁니다. 그 집의 어머니가 말합니다. 할아버지가 지금 서울에서 이 시골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는 중일지 모른다고. 식구들이 모두 에…… 하고 그네의 말에 머리를 내흔듭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할아버지가 옛날 사이클 선수였다는 것, 언제고 죽기 전 시골까지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겠다고 말했다는 것 등을 예로 들면 좀 별난 성격의 할아버지가 보이게 되는 것이지요. 소설이 필요로 하는 인물도 바로 이런 성격의 인물인 것이지요.

전상국, <상상(想像)하는 즐거움>, '나의 문학이야기'(2001)



위 글은 다면적 사고(多面的思考)의 예가 될 수 있다.

위 글의 중심화제는 '할아버지가 왜 지금까지 아무 소식도 없이 나타나지 않는가'이다. 이에 대해 세 식구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논술에 대입하면, 중심화제는 '논제'이다. 세 식구의 이야기는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하는 진술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린 손자'의 말은 주장에 대한 논거가 부적절하다. 매우 비논리적이다. '대학생'의 말은 논거가 적절하다. 논리적이다. 하지만 너무 평범하다. 그래서 설득력이 약하다. '어머니'의 주장은 일견 황당한 듯하나 매우 논리적이다. 논거가 적절하다. 다른 식구들이 생각하지 못한 관점을 취하고 있다. 그러므로 설득력이 높다. 이를테면 창의적 사고이다.



오래 전에 읽었던 법정 스님의 수필집에 실려 있는 이야기 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스님은 어느 여름날 자신이 거처하는 암자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마루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 비스듬히 주위 경치를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평소에 눈에 익고 친숙하게 보이던 산 경치가 색다르게 눈에 들어왔다.

스님은 벌떡 일어나 마루에서 마당으로 내려와 서서 허리를 굽혀 가랑이 사이로 다시 그 경치를 내다보았다. 눈앞에는 전혀 새로움이 펼쳐졌다. 하늘은 푸른 호수가 되고 산은 그 속에 잠긴 그림자가 되었다.

스님은 이 발견이 너무나도 신기해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소개를 했다. 먼저 스님이 숙달된 조교처럼 시범을 보이면 그들도 따라 하면서 어린 아이처럼 좋아했다는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가르침이 담겨 있다. 고정된 시각을 바꾸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는 가르침! 각자의 고유한 시각에서 독특한 개성이 형성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편견과 고정 관념이 생겨서 거기에 갇히는 경우가 많다. 편향된 시각과 제한된 소견으로 세상과 인간을 보게 되면, 마음에 안 들고 미운 것이 많이 생기게 마련이고, 이는 비난과 다툼의 원인이 된다. 물론 사람은 익숙하고 당연한 것에 머물기를 좋아해서 거기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익숙한 것에서의 '탈출'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사해준다.

올여름에는 어느 해보다 장마가 길었고, 장마가 끝난 직후에는 찜통더위가 지속되어 불쾌지수가 상당히 높았다. 게다가 신문과 방송에서 접하는 소식은 우리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고 마음을 갑갑하게 만드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럴 때일수록 일상사를 한 번 거꾸로 보는 시각 전환을 해보면 좋겠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떤 사람이 쓴 '항상 감사하기'라는 제목의 글은 짜증스러운 일상사도 뒤집어보면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된다는 점을 가르쳐준다.

10대의 자녀가 반항을 하면
그건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잘 있다는 것이고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직장이 있다는 것이고
집들이 하고 나서 치워야 할 게 너무 많으면
그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옷이 몸에 좀 낀다면
그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고
정부에 대한 불평불만의 소리가 많이 들리면
그건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고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자리 하나 있다면
그건 내가 걸을 수 있는 데다 차도 있다는 것이고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으면
그건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고
교회에서 뒷자리 아줌마의 엉터리 성가가 귀에 거슬린다면
그건 내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이고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고
그리고 내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이유는
내가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고
할 일 안하고 지금 내가 놀고 있는 이유는
나에게 아직 여유가 있다는 뜻이고.
-손희송(가톨릭대 교수·신부) '<토요일 아침에> 거꾸로 보기'



② 관점을 바꾸어 생각하라

제시된 자료를 표현된 대로, 남들과 같은 방향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문장이라면 앞뒤의 어순을 바꿔 보거나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거나 관련 내용을 연상하면서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해야 한다.

이형기의 '폭포'라는 작품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이 작품은 누구의 관점에서 어떤 처지를 노래한 것일까? 대개 '폭포'를 떠올리면 굵고 웅장하게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와 거센 물소리를 연상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장엄한 광경을 폭포를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에서 표현하고자 할 것이다.

이때 담을 수 있는 내용은 눈에 비친 그대로 '폭포의 장엄한 광경'이나 '거침없는 삶의 태도' 등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폭포를 '등판', 곧 벼랑을 내맡긴 '산'의 관점에서 표현하고 있다. '산'의 입장에서 인식하기 때문에 작가는 거센 폭포의 물줄기에 의해 벼랑이 깎이면서 받는 고통을 발견하고 있다. 이는 어떤 존재의 반복되는 일상적 행위가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존재에게는 고통을 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기도 하다. 관점의 전환이 대상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다.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斷末魔)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直立)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石炭紀)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墜落)을.

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
무수한 복안(複眼)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맹목(盲目)의 눈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억 년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이형기의 "폭포"



이 작품에 사용된 시어들을 보자. 1연의 '시퍼런 칼자욱'은 섬뜩한 느낌과 함께 고통의 깊이를 인지하게 한다. 길게 깎이면서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면서 아파하는 어느 존재의 모습이 선명하게 지각된다. 시인이 대상을 새롭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길게 깎이고 절리(節理)를 이루고 있는 벼랑의 형상을 '칼자욱'으로 표현한 것이다. 2연의 4행에서도 관점의 전환이 잘 드러난다. 벼랑에서 굵은 물줄기를 뿜어내는 폭포의 형상을 벼랑 위에 다시 벼랑이 솟아오른다고 표현하고 있다. 정말 폭포는 바위 벼랑 앞에 우뚝 솟아 있는 물 벼랑이라 할 수 있다. 폭포가 굵은 물줄기를 쏟아내면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웅장한 모습을 멋지게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강영선 함덕고 교사>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243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