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튀는 논술학교](6)통합교과논술을 위한 학습방법-(1)사고력을 향상시키자(③, ④)

[톡톡튀는 논술학교](6)통합교과논술을 위한 학습방법-(1)사고력을 향상시키자(③, ④)
전체적인 내용 파악하며 세부내용 읽는 능력 길러야
  • 입력 : 2010. 07.21(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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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선 함덕고 교사

③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자

같은 대상이나 사회현상에 대해 진단과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견해를 서로 견주어 보면 구체적 내용은 다르게 표현되어 있지만 대상이나 사회현상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에는 유사점이나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또는 서로 다른 대상이나 사회현상을 같은 관점으로 접근해서 진단하고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인간의 언어생활과 행동에 관한 연구는 언어학과 생물학 분야라고 할 수 있는데 모두 인지과학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경우이다.

다음의 예를 보자.



(가)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 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 이직(1362~1431)

(나)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들이 너의 흰빛을 시샘하나니
맑은 물에 깨끗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 정몽주의 모친



위의 두 작품은 모두 '까마귀'와 '백로'를 제재로 삼고 있다. 이 작품들이 공통점을 갖고 있다면 무엇인가? 또 차이점은 무엇인가?

두 작품의 공통점은 모두 '까마귀'와 '백로'를 대비시켜 작품의 의미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에서는 '까마귀'와 '백로' 모두 이중적인 존재, 곧 겉과 속이 다른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시적 화자 자신은 까마귀에 비유하고 자신을 힐난(詰難)하는 무리를 백로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겉으로는 검고 흉한 존재로 보일 수 있지마는 속은 깨끗한 존재라고 주장하면서 상대는 겉으로는 순결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보이지만 속은 오히려 흉악한 위선자라고 비판하고 있다. 상대방의 위선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나)에서는 '까마귀'는 싸움을 하는 간악한 무리, 소인배를 상징하고 '백로'는 '흰빛'의 이미지대로 순결하고 지조 있는 존재[자기 아들인 정몽주]를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이 세력을 다투는 간악한 무리들과 어울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두 작품의 차이점은 (가)에서는 '까마귀'와 '백로'가 겉과 속이 다른 존재로 표현되고 있으나 (나)에서는 '까마귀'와 '백로'가 겉이나 속의 이미지가 동일한 존재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일한 시적 대상의 속성이 (가)와 (나)에서 서로 대조적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까마귀'가 (가)에서는 긍정적 존재이나 (나)에서는 부정적 존재로 설정되어 있으며, '백로'는 (가)에서는 부정적 존재인데 반해 (나)에서는 긍정적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

이와 같이 자료 간의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파악하는 학습은 대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기르는 일이며, 개인에 따라 똑 같은 대상도 다른 의미로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며, 대상을 인식할 때 한 방향으로만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사고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자료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 파악 훈련은 사고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가장 기초적이고 필요한 훈련이다.



23년(612) 봄 정월 임오(壬午)에 황제가 조서를 내렸다. …(중략)…

"왼쪽 12군(軍)은 누방(鏤方) ·장잠(長岑) ·명해(溟海) ·개마(蓋馬) ·건안(建安) ·남소(南蘇) ·요동(遼東) ·현도 ·부여 ·조선 ·옥저 ·낙랑 등 길로 나아가고, 오른쪽 12군은 염제(蟬) ·함자(含資) ·혼미(渾彌) ·임둔(臨屯) ·후성(候城) ·제해(堤奚) ·답돈(踏頓) ·숙신 ·갈석 ·동이(東) ·대방(帶方) ·양평(襄平) 등 길로 나아가서, 연락이 끊어지지 않게 길을 이어 가서 평양에 모두 집결하라."

모두 1,133,800명이었는데 200만이라 일컬었으며, 군량을 나르는 자는 그 배가 되었다. 남쪽의 상건수(桑乾水) 가에서 사제(社祭)를 지내고, 임삭궁(臨朔宮) 남쪽에서 상제(上帝)에 제사지내고, 계성(城) 북쪽에서 마조성(馬祖星)에 제사지냈다. 황제가 친히 조절하여 군대마다 상장(上將)과 아장(亞將)을 각각 1명씩 두고, 기병은 40대(隊)로 하고, 각 대는 100명, 10대가 1단(團)이 되게 하였으며, 보병은 80대로 하고 나누어 4단으로 하였으며, 단마다 각각 편장(偏將) 1명을 두었다. 그 갑옷, 투구, 갓끈, 인장끈, 깃발은 단마다 색깔을 다르게 하였다. 매일 1군씩을 보내 서로 40리 떨어지게 하고 진영을 연이어 점차로 나아가니, 40일만에야 발진이 다 끝났다. 앞과 뒤가 서로 이어지고 북과 나팔소리가 서로 들리고 깃발이 960리에 뻗쳤다. 어영(御營) 안에 12위(衛)·3대(臺)·5성(省)·9시(寺)를 합쳐서 나누어 소속시키고, 내외 전후좌우(內外前後左右) 6군을 뒤에 출발시켜 또 80리나 뻗쳤으니, 근고에 군대 출동의 성대함이 이와 같은 것이 없었다. 2월에 황제가 군대를 지휘하여 요수(遼水)에 이르니 여러 군대가 모두 모여 물가에 다다라 큰 진을 이루었으나, 우리 군사가 강을 막고 지켰으므로 수나라 군사가 건너오지 못하였다. 황제가 공부상서(工部尙書) 우문개(宇文愷)에게 명하여 요수 서쪽 언덕에서 세 개의 부교(浮橋)를 만들게 하였는데, 완성되자 끌어다 동쪽 언덕으로 갔으나 짧아서 한 길 남짓하게 언덕에 미치지 못하였다. [이때] 우리 군사들이 크게 닥치자 수나라 군사로서 날래고 용감한 자들은 다투어 물가로 나아와 접전하였다. 우리 군사들이 높은 곳에 올라 공격하니, 수나라 군사들은 언덕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맥철장(麥鐵杖)이 언덕으로 뛰어 올라갔으나 전사웅(錢士雄) ·맹차(孟叉) 등과 함께 모두 전사하니, 이에 군사를 거두어 다리를 끌고 서쪽 언덕으로 돌아갔다. 다시 소부감(少府監) 하조(何稠)에게 명하여 다리를 잇게 하여 이틀만에 완성하였으므로, 여러 군대가 차례로 이어서 나아가 동쪽 언덕에서 크게 싸웠는데, 우리 군사들은 크게 패하여 죽은 자가 만 명을 헤아렸다. 여러 군대가 승세를 타고 나아와서 요동성을 포위하니 [이 성은] 곧 한나라의 양평성(襄平城)이었다. 황제가 요하에 이르자 조서를 내려 천하에 사면을 베풀고, 형부상서(刑部尙書) 위문승(衛文昇) 등에게 명하여 요하 동쪽의 백성들을 위무하게 하고, 10년 동안 조세를 면제해주고 군현을 두어 서로 통섭하게 하였다. …… 중략 ……

[우문]술 등의 군사는 노하(瀘河)·회원(懷遠) 두 진에서부터 사람과 말에게 모두 100일 동안의 군량을 주고, 또 방패, 갑옷, 창과 옷감, 무기, 화막(火幕)을 나누어 주니, 사람마다 3섬 이상이 되어 무거워 능히 운반할 수 없었다. 군중에 명령을 내려 "군량을 버리는 자는 목을 베겠다."고 하였으므로, 사졸들이 모두 군막 밑에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행군이 겨우 중도에 미쳤을 때 군량이 이미 떨어지려 하였다. …… 중략 …… [을지]문덕은 [우문]술의 군사들에게 굶주린 기색이 있는 것을 보고, 짐짓 그들을 피곤하게 만들려고 매번 싸울 때마다 도망가니, [우문]술이 하루 동안에 일곱 번 싸워 모두 이겼다. [우문술이] 이미 여러 번 승리한 것을 믿고 또 여러 사람의 의논에 강제되어, 이리하여 마침내 동쪽으로 나아가 살수(薩水)를 건너 평양성에서 30리 떨어진 곳에서 산을 의지하여 진을 쳤다. [을지]문덕은 다시 사자를 보내 거짓 항복하며 [우문]술에게 청하였다. "만약 군대를 돌리시면 왕을 모시고 [황제의] 행재소로 알현하겠습니다." [우문]술은 사졸들이 피로하고 쇠약해져 다시 싸울 수 없는 것을 보고, 또 평양성이 험하고 튼튼하여서 갑자기 함락시키기 어려운 것을 헤아리고, 마침내 그 속임수에 따라 되돌아갔다. [우문]술 등이 방형의 진을 이루고 행군하였는데, 우리 군대가 사방에서 습격하니 [우문]술 등이 한편 싸우며 한편 행군하였다. 가을 7월에 [수나라 군대가] 살수에 이르러 군대의 반이 건넜을 때 우리 군사가 뒤에서 후군을 쳤으므로, 우둔위장군 신세웅(辛世雄)이 전사하였다. 이리하여 여러 군대가 모두 무너져서 걷잡을 수 없게 되어 장수와 사졸들이 달아나 돌아가는데, 하루낮 하룻밤 사이에 압록수에 이르러 450리를 행군하였다. 장군인 천수(天水) 사람 왕인공(王仁恭)이 후군이 되어 우리 군대를 쳐서 물리쳤다. 내호아는 [우문]술 등이 패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역시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으며, 오직 위문승의 1군만이 홀로 온전하였다. 처음 9군이 요하를 건넜을 때는 무릇 30만 5천 명이었는데, 요동성으로 돌아가 다다랐을 때는 겨우 2천7백 명이었으며, 쌓아둔 기계가 억만을 헤아렸으나 모두 잃어버려 없어졌다. 황제가 크게 노하여 [우문]술 등을 쇠사슬로 묶고 계묘일[25일]에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이전에 백제 왕 장(璋)[무왕]이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를 칠 것을 청하니, 황제가 [백제를] 시켜 우리나라의 동정을 엿보게 하였으나, 장은 안으로 우리나라와 몰래 통하였다. 수나라 군대가 장차 출동하려 하자, 장은 그 신하 국지모(國智牟)를 수나라에 들여보내 출병할 시기를 알려줄 것을 청하니, 황제가 크게 기뻐하며 후하게 상을 주고, 상서기부랑(尙書起部郞) 석률(席律)을 백제에 보내 모일 시기를 알렸다. 수나라 군대가 요하를 건너자, 백제도 역시 국경에 군사를 엄히 배치하고 말로는 수나라를 돕는다고 하면서, 실은 양다리를 걸치었다. 이 정벌에서 [수나라는] 다만 요수 서쪽에서 우리 무려라(武邏)를 함락시키고, 요동군과 통정진(通定鎭)을 두었을 뿐이다.

- 김부식,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8(디지털한국학 www.koreandb.net/Sam/SamInfo.htm)



④ 숲을 보면서 나무도 자세히 보라


제시된 자료를 분석하고 이해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미시적 관점에서 거시적 관점으로 살펴나가는 방식도 있을 수가 있고, 거시적 관점에서 미시적 관점으로 파악하는 방식도 있을 수가 있다.

그런데 논술시험에서는 내용이 다른 자료들을 제시하여 서로 관계를 지어 과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숲을 보면서 그 속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도 자세히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거시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미시적으로 대상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거시적 관점에서 미시적 관점으로, 또는 그 반대로 계층적, 단계적으로 대상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정적 상태에서 통합적으로 대상을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옆의 예문의 전체적 내용은 수나라 100만 대군의 침공 과정과 고구려의 승리를 서술하고 있는 글이다. 수나라는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해 대규모의 군대를 동원하였으며 엄한 군령(軍令)으로 군대를 통제하였고, 초기에는 승리를 거두면서 진격하였지만 평양성 싸움에서 패한 뒤 살수대첩에서 크게 패하고 소수의 군사들만 목숨을 건졌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럼 세부적으로 어떤 사실들을 말하고 있을까? 수나라의 침공 작전과 의도, 고구려의 국방력, 당시의 외교관계 등을 알 수 있다.

우선 수나라 군대가 왼쪽, 오른쪽으로 크게 두 대열로 나누어 침공했음을 알 수 있다. 워낙 군사들의 수가 많기 때문에 여러 갈래의 길로 나누어 진격했음을 알 수 있다. 수나라 군대의 출정이 '매일 1군씩을 보내 서로 40리 떨어지게 하고 진영을 연이어 점차로 나아가니, 40일만에야 발진이 다 끝났다.'고 했으니 군사들의 행렬이 얼마나 어마어마하고 길게 이어졌는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요수와 평양성과 살수에서의 싸움과 그 결과를 알려주고 있다.

수나라는 아마 고구려를 완전히 멸망시키고 정복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추리할 수 있다. 백만이 넘는 대군을 한꺼번에 동원하였다는 점, 군량을 나르는 자들은 그 배가 되었다는 점, 수나라 황제가 각 군들끼리 연락을 하면서 평양에 모두 집결하라고 한 점 등으로 미루어 그러한 의도를 알 수가 있다. 다음으로 수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한 것은 고구려의 국방력을 반증해 준다. 고구려의 성곽은 매우 튼튼하고 군사들은 날래고 용감하여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란 것을 알았기에 대군을 파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백제의 등거리 외교 정책이 고구려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고구려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을 이 글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진술하라고 하면 어떻게 진술할 수 있을까?

제일 먼저 수나라의 전술의 실패를 제시할 수 있다. 우문술은 군사들에게 100일 동안의 군량과 장비를 주고 개인적으로 알아서 관리하도록 했다. 그러자 군사들은 무거운 짐을 휴대하고 진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휴대하고 나머지 짐들을 땅에 파묻어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평양성 싸움에서 장기전을 펼칠 수 없었기 때문에 퇴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구려군은 이런 사실을 간파하고 장기전을 펼치면서 적을 깊숙이 끌어들였기 때문에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을지문덕 장군의 뛰어난 상황판단 능력과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수나라 군사들은 대부분의 군량과 장비들을 땅속에 파묻고 행군했기 때문에 도중에 군량이 떨어져 굶주린 자들이 많았다. 을지문덕 장군은 수나라 군사들이 '굶주린 기색이 있는 것을 보고, 짐짓 그들을 피곤하게 만들려고 매번 싸울 때마다 도망'가면서 적들을 유인한 것이다. 그리고 거짓 항복으로 우문술의 군사들을 회군하도록 유도했다. 이러한 속임수에 넘어가서 되돌아가는 수나라 군사들이 살수에 이르렀을 때 뒤에서 공격함으로써 수군들을 물리쳐서 크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어떤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훌륭한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주는 한 예라 하겠다.

이와 같이 글을 읽을 때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면서 세부적인 내용체계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읽어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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