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섬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제주섬(濟州島)보다 제주도(濟州道)로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 섬보다 행정구역의 명칭을 쓰는 게 훨씬 자긍심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역사적 배경도 한 몫하고 있을 지 모른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제주는 전라도에 속했다. 그래서 전라감사(일제 때는 도지사)의 명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제주도민들은 광복과 더불어 제주를 전라남도에서 분리된 하나의 독립된 행정구역과 자치권을 가진 도(道)로 승격시키고자 했다. 제주섬의 또 다른 독립운동인 셈이다.
조선시대에 제주에 내려온 중앙관리들은 제주의 풍속을 함부로 폄하했다. 말과 풍습이 다르고, 기후가 다른 점에 대해 독특함과 다양성 측면 보다 비하의 눈으로 보기 일쑤였다. 이러한 시각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서울에 유학한 선배들의 경험담을 빌리자면 제주사람이라는 이유로 하숙집을 구하는 일도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더 다른 시·도와 동등한 국민이기를 바라는 잠재의식이 싹텄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어떤가. 한반도와 멀리 떨어진 제주섬은 흔히 신의 축복을 받은 천혜의 땅으로 불리어진다. 국내 전체 식물 종의 절반 이상이 제주에서 자생한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곤충상은 더욱 다양하고 풍부하다. 화산 지형과 지질도 거의 제주에서만 볼 수 있다. 육지부가 하나의 거대한 유교문화권이라면 제주의 해양문화도 만만치 않다. 한국어속의 또 다른 제주어도 알토란처럼 남아 있다. 더구나 제주섬이 없었다면 우리 국토는 얼마나 좁아졌을 것인가. 어찌 제주를 전 국토의 1%에 불과한 작은 섬이라 할 것인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제주는 1946년 도 승격 이후 60여년 간 육지부 따라하기에 만 몰두해 왔다. 이러한 경향(傾向)은 도시건설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도시계획도, 건물도, 도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육지식'으로 다루려고 했다. 제주섬문화의 정수(精髓)라고 할 수 있는 해양문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존과 활용을 위한 종합적인 정책은 커녕 오히려 해마다 사라지고 있다. 그래도 되는가.
누구나 알고 있듯이 탐라선인들은 해민(海民)들이었다. 바다를 두려워 하지 않고 드넓은 대양을 돌아다니며 어로작업을 하거나 해상교역을 일삼아 왔다. 여기에는 주변 지역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제주의 옛지도를 보면 제주섬을 중심에 놓고 이웃나라의 도시와 심지어 멀리 떨어진 나라들의 이름으로 빼곡히 그려져 있다. 이는 대양으로 나가고자 했던 제주선인들이 한라산 정상에서 바라본 주변 지역과 정보를 통해 얻은 지식을 반영해 그린 지도일 것이다.
섬은 바다로 닫혀 있기도 하고, 바다를 통해 세계로 열려 있기도 하다. 열림과 닫힘은 우리들의 꿈과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세상은 여전히 사람과 물자의 교류를 통해 번영하거나 쇠퇴(衰退)한다. 더구나 제주섬 주변에는 비행기로 2시간 정도면 접근할 수 있는 도시 50여개가 흩어져 있다. 이들 도시와의 교류 확대에 제주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해양문화를 제주섬의 정체성을 곧추 세워나가는 자양분으로 삼아나가야 한다. 제주의 해양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해양박물관도 필요하다. 그 속에 선인들이 해상왕국을 건설하려 했던 정신과 자취를 보여주고, 이를 국제자유도시 건설의 정신적 지표로 삼는 지혜가 요구된다. 그것이 '제주는 세계로, 세계는 제주로' 오가는 새로운 역사를 열어 나가는 첫걸음이기도 하다.<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