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규 칼럼]한라산연구소 부활을 기다리며

[강문규 칼럼]한라산연구소 부활을 기다리며
  • 입력 : 2010. 09.14(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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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는 추억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기억들은 우연히 펼쳐든 오래된 앨범처럼 때때로 내면의 이야기를 한올씩 풀어내게 한다. 며칠 전 본지에 실린, 한라산연구소 부활(復活)을 검토하라는 우근민지사의 지시도 그런 기억의 꼬투리를 끄집어내게 하였다.

10년 전인 2000년 9월, 한라산학술대탐사를 벌이던 한라일보 탐사팀은 백두산탐사를 기획·추진하고 있었다. 한라산과 백두산을 비교탐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남북 첫 정상회담에서 백두산과 한라산 교차관광사업이 합의되면서 백두산관광단에 필자도 끼게 되었다. 나머지 탐사팀은 중국의 연변을 거쳐 10여일간 백두산을 탐사한 뒤 그 내용을 본지에 소개했다.

탐사팀에서 빠져나와 북한 방문에 나선 필자는 평양에서 삼지연공항을 거쳐 로프웨이를 타고 백두산 천지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천지연구소'가 천지내에 설치돼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연구소는 추위를 피해 지하에 건축돼 있었다. 그곳에서 식물학을 전공하는 학자와 천지의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머물고 있다는 북측요원을 만나 인터뷰 했다. 그 내용은 그해 10월 본지에 10여회 게재된 바 있다.

그 때 '백두산총서'가 1990년대초에 출간된 사실도 접하게 되었다. 당시 한라산탐사팀도 '한라산총서' 편찬(編纂)을 논의하고 있던 참이어서 놀라움과 함께 적지 않은 자극이 되었다. 평양에 돌아와 고려호텔에 머물며 수소문한 끝에 백두산총서 1권(개설서)을 구할 수 있었다. 내용을 보니 백두산총서는 북한내 40여개 연구소 등이 참여해 펴냈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책의 지질과 형태는 1960년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측이 백두산에 많은 관심을 갖고, 그들 나름대로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그 가치를 정리하고 있음은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백두산과 더불어 한반도의 두 축을 이루는 남한 최고봉으로서 조국통일과 제주의 상징이라고 자랑하는 한라산은 어떤가. 그에 걸맞는 연구와 선양작업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볼 때 저절로 자괴감(自愧感)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평양에서 돌아와 당시 우근민 지사에게 '한라산연구소' 설치의 필요성과 '한라산총서'(11권) 편찬작업의 시급성을 건의했다. 이를 도정이 받아들이며 관련 작업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한라산연구소는 국내에서는 특정 산 만을 위한 최초·유일의 연구소다. 10년 가까이 특정 산을 위한 학술탐사도 아직까지는 한라산이 그 기록을 갖고 있다. 그 만큼 한라산은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과 자긍심이 불요불급한 일들일까. 지난해 국회에서 한라산 관리권을 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 이양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그러나 특정 산만을 연구하기 위한 연구소와 특정 산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총서를 펴낸 곳이 있느냐는 반박에 그 지적은 곧 철회(撤回)됐다.

김태환 전지사 시절에 사라진 한라산연구소가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래서 반갑다. 이는 한라산연구소가 폐지되기 전 쥐꼬리만한 예산과 부족한 연구인력에도 불구하고 전문연구기관 못지 않은 왕성하게 연구보고서를 펴내었던 기억이 있어 더욱 그렇다. 따지고 보면 한라산을 비롯한 제주섬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가장 큰 힘은 다른데 있지 않다. 바로 제주섬의 가치를 부단히 찾아내고 이를 세계속에 펼쳐보이고자 했던 사람들의 열정과 집념, 전문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던가.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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