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규칼럼]감귤을 보며 농정에 묻는다

[강문규칼럼]감귤을 보며 농정에 묻는다
  • 입력 : 2010. 10.26(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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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은 예나 지금이나 제주를 상징하는 풍물이다. 가장 먼저 여러 종류의 제주감귤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사람은 백호 임제(林悌, 1549~1587)로 보인다. 그는 1577년 제주목사로 있던 부친에게 과거에 급제한 것을 알리기 위해 제주를 찾았다. 그는 섬을 한바퀴 돌고 한라산을 오른 뒤 기행문과 시문을 묶어 '남명소승'으로 펴냈다. 이 책에 실린 귤유보(橘柚譜)에는 유자, 당유자, 감귤, 유감, 대금귤, 소금귤, 동정귤, 청귤, 산귤 등 9종에 대해 특징과 맛을 상세히 품평하고 있다.

1731년 9월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 제주에 온 정운경(鄭運經, 1699~1753)도 귤보(橘譜)를 남겼다. 모두 15가지 귤을 상중하 3품으로 구분해 그 색깔과 맛의 특징을 소개하고 있는데 품종별로 귤과 가지, 꽃의 형태를 그리고 색깔을 입혀놓고 있다. 제주에서 27년간 유배생활을 한 뒤 나중에 제주목사를 역임한 조정철(趙貞喆, 1751~1831)도 15종의 귤을 귤유품제(橘柚品題)라는 제목으로 시와 함께 특징을 정리하고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대귤(大橘)의 경우 "탐라에는 예전에 이 귤이 없었는데, 숙종조에 연경(중국의 수도)에 사신으로 갔다가 가져온 것을 섬(제주)으로 들여보내 씨를 심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작은 호리병과 같은 품종인 별귤(別橘)은, 정운경의 귤유에 호리병박과 같다고 소개한 왜귤(倭橘)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제주에 남아 있는 병귤과 동일 품종이 아닐까 싶다.

이 밖에도 제주에 부임했던 관리들이나 유배인들의 시문집에는 귤유에 대한 기록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처럼 제주의 귤은 오래전부터 세인들의 관심거리였다. 그저 맛으로만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난초나 사향의 냄새 같고, 미인의 자태 같아 사랑스러워 차마 놓을 수가 없다"거나 유감(乳柑)의 경우 "귤 한 알을 책상밑에 놓으면 방 안 가득 향기가 퍼진다"고 상찬하고 있다.

탐라직방설(耽羅職方設)을 펴낸 이강회(李綱會, 1789~?)도 대전통편(大典通編) 등을 인용하며 눈여겨 볼 만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제주 삼읍에는 과원 44곳에 과원지기를 두는데, 감귤과 지목(枳木)을 매년 비자나무나 옻나무, 산유자, 이년목과 접붙인다"고 했다.(가능한 일인가?) 이어 "거주민으로 하여금 심고 기르게 하되 부지런하고 태만함을 살펴 상벌을 내려 권면하고 징계한다. 또 감자와 당감자 각 8그루, 유감 20그루, 동정귤 10그루를 심은 자는 세금을 면제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나름대로 감귤재배를 장려하기 위한 정책인데, 나중에는 도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폐작을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감귤정책과 관련한 안타까움이 조선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이후 감귤이 도민 주소득원으로 자리잡으면서 70년대 후반에는 도청에 감귤과를 설치한데 이어 감귤연구소, 감귤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감귤유통과 신품종육성 등을 통해 감귤산업을 지속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오는 2012년부터 품종보호제도의 전면시행으로 오는 2020년까지 수백억원의 로열티를 물게 되었다. 신품종개발은 등한히 하고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결과다. 반면 자체개발한 11개의 품종은 보급에 5~10년이 걸린다고 하니 그동안 감귤농정은 무얼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많던 재래종 귤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토종의 중요성을 모르면 로열티 지불의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이 어디 감귤에만 그치는 것일까.

<논 설 실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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