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8월 조선인 통역사, 요리사와 함께 파란눈의 백인이 화북포구에 들어온다. 그는 지방관(제주목사)의 허락을 받고 호위병들과 함께 제주성 남문에 도착한다. "성벽의 탑과 감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방인(異邦人)을 내려보고 있었다. 드디어 성문이 열리고 말을 탄채 성안으로 들어서자 엄청난 군중이 일행을 구경하려고 몰려들어 호위병들이 곤봉을 휘둘러 내쫓을 지경이었다. 한동안 행진이 계속된 뒤 200여명의 병사들이 도열해 있는 곳을 지나 지방관이 있는 곳으로 안내 되었다. 곧이어 일행을 환영하는 축포가 울려퍼졌다." 지금부터 120여년 전 제주를 방문했던 프랑스인 세레롱베가 남긴 제주기행문의 일부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01년 늦은 봄에 독일인 지그프리트 겐테가 '고종 황실의 또 다른 상선 현익호'를 타고 제주시 건입포에 도착한다. 그는 현익호에서 내려 "작은 배도 아니고, 통나무에 홈을 파서 만든 카누도 아니며 배의 형태를 갖추지 않은, 뱃전도 없는 뗏목(테우)에 몸과 짐을 싣고" 제주섬에 발을 내딛는다. 겐테는 며칠간 산행을 만류하는 제주목사를 설득한 끝에 서양인으로서는 물론 외국인으로서 처음으로 한라산을 등정한 뒤 높이를 측정, 1950m임을 확인하고 이를 독일 퀼른신문에 기록으로 남겼다.
이러한 옛 기록(이야기)들은 많은 이들에게 흥미를 안겨준다. 더구나 해당 국가의 관광객들이 알게 된다면 그들은 제주에 대한 관심과 함께 화북포구나 산지포구, 제주성, 한라산 등을 찾고 싶은 충동을 느낄지 모른다. 필자 역시 10여년 전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정해진 여행코스를 따라가다 주변에 월남전에 참전했던 '맹호사단 사령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정을 바꿔 그 곳을 찾은 적이 있었다. 이처럼 여행은 자신과 연관된 지역이 가장 흥미를 끌게 하는 속성(屬性)이 있다.
제주향토사에는 내·외국인들에게 제주에 관한 흥미를 촉발시킬 만한 이야기들이 숱하게 깔려 있다. 전문가들은 관광의 요소로 흔히 볼거리, 살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를 갖추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요즘은 '느낄거리'가 강조되고 있다. 스토리텔링을 통한 감성의 자극과 같은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야깃거리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3년 전 한국을 방문했던 미래학자 롤프 얀센의 조언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드림 소사이어티'를 펴낸 인물이다. 그는 "한국은 '부리'를 뒤져 그 속에 녹아 있는 고유역사와 신화, 전통문화를 건져올려 상품화 하라"고 충고한다. 그런 점에서 며칠 전 우근민 지사가 "제주도공무원들도 제주에 대한 역사를 5분, 10분, 30분 정도는 소개할 수 있도록 역사교육 특강을 실시하라"고 지시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반가운 소식이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연간 700만명 시대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도 60만명을 넘고 있다. 하지만 제주는 그들에게 어떤 상품을 팔고 있나. 그 중에 문화상품도 있을지 궁금하다. 제주관광은 이제 고품격(高品格)의 시대로 나가야 한다. 1960년대 이후부터 틀에 박힌 코스와 먹거리, 볼거리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과 차별화 된 디자인과 이미지를 가꾸어야 한다. 그래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르 클레지오'가 그의 기행문 '제주예찬'에서 그랬던 것처럼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깊은 인상을 안고 다시 찾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행정이 선도할 필요가 있다. 그럴려면 제주에 관한 역사 만이 아니라 문화와 생태 등 제주의 가치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공무원들은 물론 학생, 도민들에게도 확산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