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2월 중순 세종의원 원장인 김순택선생으로 부터 뜻밖의 매우 귀중한 제보와 함께 자료선물을 받았다. 그것은 1926년 당시 서울에서 발행되던 매일신보에 '제주시민의 철시성복(撤市成服)/ 비장한 봉도식(奉悼式)' 제하의 기사와 함께 칠성단에 모여 순종임금의 승하를 애도하는 모습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이 자료를 접하면서 오랜 열망이 현실로 성취됐을 때와 같은 놀라움과 환희에 사로잡혔다.(2010년 12월14일자 5·9면 기사 참조)
필자는 20년 전인 1991년 10월 본보에 '칠성단(대)를 아십니까'라는 제하의 사회면 톱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다. 그 후 칠성대에 관한 고문헌의 기록과 옛지도속에 담겨 있는 칠성대의 위치를 표시한 그림자료 등을 하나씩 찾아내 이를 단편적으로 소개해 왔다. "칠성도(七星圖)는 제주성안에 있는데 돌로 쌓았던 옛터가 있다. 삼성(三姓)이 처음 나와서 삼도(三都)를 나누어 차지하고 북두성(北斗星) 모양으로 대를 쌓아 나누어 웅거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 '제주목 고적조')"의 기록을 하나씩 뒷바침하는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문헌과 구전으로 전해지는 칠성단은 1930년대까지 남아 있었다고 하지만 실체는 접하지 못해 답답했었다. 그런데 1926년도의 칠성단 사진과 그에 관한 기사가 함께 발굴되었으니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칠성대는 삼성신화의 후편과 같은 의미를 안고 있다. 활을 쏘아 삼도를 나누어 차지한 삼성(三姓)의 후예들이 그 후 어떤 정신세계 속에서 탐라를 개척해 왔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자료다. 북두칠성을 본 떠 칠성대를 쌓고 이를 탐라사회의 번영을 위한 부족간 결속과 단합의 상징으로 삼은 독창성도 놀랍다. 북두칠성 신앙에 따르면 일곱개의 별은 저마다 관장하는 일이 다르다. 처음 별자리는 자손에게 만덕을 주고, 둘째별은 재난을 없애주고, 셋째별은 업장을 소멸시켜주고, 넷째별은 구하는 바를 모두 얻게 하고, 다섯째별은 백가지 장애를 없애주고, 여섯째별은 복덕(福德)을 두루 갖추게 해주고, 일곱째별은 수명을 오래 연장시켜 준다고 여겼다.(인터넷 '다음', '네이버' 검색자료)
북두칠성은 예부터 우리나라와 중국에 칠성신앙으로 전해 왔다. 하지만 탐라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제주성안에 특별한 의미를 간직한 칠성대를 쌓고 이를(비록 일제강점기에 사라졌지만) 천년이 넘도록 전해 왔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다.
제주목사를 지낸 노봉 김정이 그의 문집에 남긴 글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는 관덕정 뒤 월대(月臺)와 칠성도를 수축(修築)한 뒤 "옛 도읍의 유적 날로 황량한데/ 근처에 사는 사람들 모두 헐어 무너뜨렸네/ 평평한 언덕처럼 마구 다녀 한번 이치를 밝히니/ 성 안 가득 별과 달 다시 뜨네"라는 시를 남겼다. 도시 전체를 별과 달의 조형물로 장식하고 이를 후손들에게까지 남긴 도시가 과연 세계에서 찾아 볼 수 있을까. 이처럼 칠성대는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계발할 수 있는 잠재력을 풍부하게 갖고 있다.
미국 알래스카주의 주기(州旗)는 북두칠성을 담고 있다. 1927년 13세 소년이 그린 북두칠성 그림을 주기로 삼은 것이라고 한다. 이를 브랜드로 하는 상품도 많다. 그런데 정작 도시 전체를 해와 달이 가득한 터전임을 칠성대로 남기고, 그런 역사와 문화유산을 거느리고 있는 제주는 이를 방치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새해는 지혜로움과 민첩함을 상징하는 토끼처럼 제주의 시각과 언어로 제주의 가치를 논하고, 이를 북돋우는 한 해로 가꾸어야 할 때다. 그래서 제주인들의 마음속에 해와 별이 가득하길 소망한다.
<논 설 실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