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관덕정 마당에서 열린 입춘굿판을 휘저으며 시간을 보냈다. 올해는 구제역 파동으로 대부분의 대형 축제들이 취소되는 수난(受難)을 겪었는데 입춘굿은 그 화를 피해 갈 수 있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관광객들이 모이지 않도록 주최측이 날짜를 바꾸는 세심한 배려(?) 끝에 엉뚱한 입춘절에 입춘굿이 열렸으니 온전한 것은 아니다.
입춘굿은 하늘에서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지상에 내려와 산천 곳곳에 좌정한 신들을 위해 인간들이 새해 인사를 올리는 날이다. 한해의 무사안녕과 오곡의 풍성함을 기원하는 굿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모여 간절하게 기원을 해야 신들이 흡족하게 여길 터이다. 기왕이면 구제역도 하루속히 물리쳐 달라고 많은 이들이 한 마음으로 부탁했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주최측에서는 일부러 날짜를 바꾸면서까지 관람객들을 내쫓았으니 과연 신들이 이를 어여삐 여길지 모르겠다.
관덕정과 목관아에서 열린 입춘굿놀이 행사장에는 예년(例年)에 비하면 그 수가 크게 줄었지만 그래도 시민들의 발길이 북적였다. 굿판에는 눈발이 펄펄 휘날리는데도 관덕정 마루 가득 둘러 앉아 굿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단골손님들의 면면은 여전히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낀 모습으로 충성스럽게 나타났다. 그들과 반갑게 악수를 하고 주변에 고망술집으로 건너가 오랫만에 대포한잔하는 즐거움이 없다면 얼마나 허전할 것인가. 그곳에서 일본에서 온 민속학자 몇몇도 만나 인사했다. 입춘굿 개최 날짜가 변경됐음에도 먼 곳을 용케 찾아왔으니 놀랍다.
그들을 보며 갑자기 우리의 '복친'들이 떠올랐다. 집안에 큰 일이 나면 늘 그렇듯이 '복친'들의 면면을 떠올리게 된다. 가까운 일가로서 그들은 온갖 굿은 일을 하며 큰 일을 치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입춘굿의 가장 가까운 복친은 누구일까. 가만히 손꼽아 보니 대강은 손가락을 꼽을 수 있다. 제주자치도와 행정시의 문화관광 부서나 문화재위원들, 축제위원 같은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복친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면 이들을 거느리는 도지사를 비롯한 실·국장들, 도의회 의원들도 가장 가까운 친척에 해당한다. 문화예술단체나 문화예술인들도 먼 촌수는 아닐 것이다. 축제 관련 세미나가 열릴 때마다 열 올리며 사자후(獅子吼)를 쏟아내는 이들도 족보를 따지면 빠져서는 안될 인물들이다.
대개의 집안 일이 그렇듯이 축제도 참가하는게 귀찮은 일일 수 있다. 눈발도 휘날리는데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TV를 보면 될 것을 하릴 없이 돌아다녀 뭘 할 것인가. 그래서 애써 외면할 수도 있다. 그 마음을 모를리 없지만 그래도 그건 아니다. 축제와 관련된 인사들이 빠지면 신명이 나지 않는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다지엉' 함께 즐겨야 신명나는 축제가 된다. 올해 입춘굿놀이가 시들해진 이유는 예산이 대폭 삭감된데도 원인이 있다. 지난해 7000만원이던 예산이 올해는 4000만원으로 대폭 삭감됐으니 주최측도 의기소침하고, 그것은 축제의 가락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음직 하다.
입춘굿판에는 제주칠머리당 영등굿도 시연됐다. 타시도는 물론 세계 각국이 획득(獲得)하고 싶어하는 세계문화유산이다. 이는 인류가 간직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보물 목록에 올랐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를 더욱 빛이 나도록 소중히 갈고 닦아야 할 일이다. 입춘굿도 단순한 연례행사로 여겨서는 안된다. 그것은 오랜 제주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제주신화의 문화콘텐츠를 어떻게 가꾸어야 할 것인지를 민·관이 함께 토론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마당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논 설 실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