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찬 맛집을 찾아서](4)보성시장 '현경식당'

[당찬 맛집을 찾아서](4)보성시장 '현경식당'
"옛 시절 추억과 인정까지 듬뿍 드려요"
  • 입력 : 2011. 03.19(토) 00:00
  •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제주시 보성시장내 '현경식당'은 전통의 맛을 지키려는 주인 홍춘열씨가 직접 만들어 낸 순대와 국물, 내장이 일품이다./사진=이승철기자 sclee@ihalla.com

직접 만들어 담백·쫄깃 순대 '일품'
배추 숭숭 썬 국밥 "끝내줘요" 탄성

순대가 길었기 때문일까. 기자와 '순대국밥'과의 인연은 질기고도 길다. 3년전 '대를 잇는 사람들'연재를 하는 동안, '대를 잇는 순대 가족'이 적지 않음을 느껴야 했다. 그렇게 동문재래시장, 서문시장, 오일시장의 내로라하는 순대국밥집 주인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이번에는 보성시장까지 오고 말았다. 하지만 어찌보면 보성시장 순대골목은 대학시절 가장 많이 발길을 했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던 16일. 춥게만 느껴지는 날씨가 구수하면서도 뜨끈한 음식 생각을 부추겼다. 추울수록 더 생각나는 음식, 순대국밥. 서민들의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고 때론 아픈 속을 풀어주는 음식이기도 하다.

시원하면서도 담백한 국물에 쫄깃한 순대 맛이 일품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곳은 보성시장 순대골목 안 '현경식당'이다. 이곳의 주인장은 홍춘열(63)씨.

순대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고 있었다. 갓 만들어져 넓은 채반에 누워있는 순대와 커다란 솥에서 삶아지고 있는 대창, 북부기, 막창, 머릿고기를 보니 허기가 몰려왔다.

식당안에 들어서니 고기를 삶아 써는 손길이 분주했다. 주인장 홍씨는 '글 쓰는 순대국밥집 아줌마'로도 통한다. 그의 글의 소재는 당연히 국밥집 '손님'이야기다. 1993년 전국 라디오 전파를 탄 '귀한 손님 이야기'는 오랜 세월동안 그가 잊지 못하는 손님 중 한사람이다. 이른 시각에 험상궂은 청년이 들어왔는데 처음에 내키지 않았던 손님이었단다. 하지만 혼자 식사를 하는 그와 앉아 얘기를 하다보니 서른 한살 이었던 그 청년은 어린시절 잘못으로 20년이라는 긴 옥살이 끝에 세상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는 시내버스 요금이 얼마인지도 모른다며 불안해 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해줬고 그 청년은 고맙다면서 국밥집을 떠났다. 그 손님이야기는 방송을 통해 세상에 소개됐다. 그리고 홍씨는 그를 세상이, 그의 가족이 따뜻하게 받아주기를 빌고 또 빈다고 했다.

서른아홉에 남편과 사별하고 순대국밥집을 운영하면서 두 아들을 길러낸 홍씨. 버거울 때도 있지만 순대를 만들고, 시금치무침, 갓김치, 양파절임, 배추김치, 깍두기 등 밑반찬까지 모두 손수 담근다.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기자에게 국밥을 말아 얼른 내밀었다. 뼈를 우려내 만들어낸 국물에 순대와 내장이 적당히 들어간데다 연둣빛과 초록빛의 중간쯤인 배추가 숭숭 썰어진 순대국밥을 한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떠오르는 광고문구 '국물 맛이 끝내줘요'. 순대는 담백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요란한 재료보다는 전통의 맛을 지키려는 홍씨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먹다가 차림표를 보는 순간 국밥 값이 만만치 않다. 주인장이 미안한듯 이야기를 꺼낸다. "채소값이 올라서 여름부터 지금까지 고전하고 있었는데도 값을 올릴 수가 없었어. 그런데 결국 얼마전에…."

이렇게 국밥값을 올리고 말았단다. 채소값이 올랐을때는 손해를 감수하면서라도 음식값을 올리지 않았는데 주재료인 돼지부산물 값이 폭등해서 어쩔수 없이 올리려니 마음이 무거웠다고 말했다. 돼지 한마리를 잡으면 나오는 돼지 부산물이 전에 2만원이었지만 지금은 1만원 올라서 3만원이다. 국물을 내기 위한 돼지 뼈 값도 갑절이상 올랐다.

그래도 다행히 단골손님들이 "요즘 모든게 올랐는데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들이 더 많단다. '마음의 고향'이라고. 하지만 '순대국밥'이 서민음식으로 남기를 그는 또 바라고 바란다고 했다.

뚝배기 그릇 바닥까지 긁어먹으면서 생각했다.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져 나오는 이야기 보따리가 녹아든 순대국밥이 어떻게 진국이 아닐 수 있을까. 국밥 5000원, 백반 5500원, 내장모듬 1만5000원, 순대·머릿고기 1만원. 첫째주 일요일은 쉰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2 개)
이         름 이   메   일
426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