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1960년대, 그 때는 의·식·주가 매우 귀하던 시절이었다. 아이들이 돼지 오줌보로 만든 축구공을 갖고 뛰어놀면 어머니들은 빨리 배고파진다고, 옷이 헤진다고 말렸다. 봄이면 들녘으로 나가 '맹게낭(청미래넝쿨)'순이나 '뺑이'를 뽑아 먹으며 놀기도 했다. 여름에는 콩밭에 뛰어들어 풋콩을 한아름 캐다 구워 먹다보면 얼굴이 검게 뒤범벅 되기도 했다. 학교가 파하기 무섭게 산탈(산딸기)이나 삼동(벚나무 열매)을 따러 다녔다. 그 시절에도 가을은 풍성했다. 조가 익을 무렵 계곡 같은 곳을 가면 바나나를 닮은 '유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데 맛이 아주 달았다. 무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나를 쑥 뽑아 돌에 쳐서 연두색 있는 부분만 먹는데 너무 많이 먹으면 속이 쓰렸다. 늦가을이 되면 나뭇가지에 걸린 두레기(하늘타리)가 먹음직 하지만 느끼해 많이 먹지는 못했다. 겨울이면 눈이 오는 날에도 단 것에 주린 아이들은 동백나무에 올라 대나무 빨대로 동백꽃잎에 고여 있는 단물을 빨아먹기도 했다(벌들에게는 자기들의 식량을 빨아먹는 약탈자(掠奪者)로 비쳤을 수도 있다).
새삼 유년의 먹거리 사냥사를 꺼내게 된 것은 '불로장생-건강과 아름다움의 약속'이라는 긴 제목의 책 때문이다. 거기에는 어릴적 들녘을 누비며 접했던 식물 이야기들이 가득 실려 있다. 심지어 난드르를 걸을 때 손발을 긁히게 했던 환삼풀 같은 쓸모 없는(?) 풀마저도 귀한 약재가 된다는 사실을 접하며 어린 시절 고향의 들판이 뇌리에 펼쳐졌던 것이다.
이런 놀라움과 즐거움을 안겨준 이 책은 제주MBC 송창우·김봉훈기자가 취재와 영상촬영을 맡아 5부작 다큐멘터리로 방영됐던 방송다큐집이다. 이 다큐는 한라산과 중산간, 섬지역을 누비며 제주약초의 비밀찾기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들의 뿌리이자 제주인들의 본향인 제주섬의 약초(한방)에 관한 가치를 조명하고 이를 제주사회에 일깨우려는 의도가 전편(全篇)에 흐르고 있다. 사실 기자는 발품 팔며 현장을 누비는 동료기자들에게 언제나 박수 칠 준비를 하는 직업인이다. 현장을 누비며 쓴 기사에는 치열한 기자정신과 땀냄새가 배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식물이나 약초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매우 생생하고 유익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요마적에 이르러 한방에 관한 세인들의 관심은 무척 높아지고 있다. 2000종이 넘는 식물을 거느리고 있는 제주로서는 한방산업의 무한한 잠재력을 외면할 수 없다. 그래서 취재팀이 들려주는 선진국들의 녹색건강산업에 관한 보고서를 접하노라면 저절로 조바심이 생겨난다. 미래의 가능성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 채 끝없이 표류(漂流)하는 제주섬도 함께 오버랩 된다. 그것은 "'한방의 보고'인 제주는 왜 이런 일을 못 할까"라는 탄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제주의 한방산업을 이끌어야 할 책무를 지고 있는 공직자들이 먼저 읽어보아야 할 '긴급 보고서'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의 주제는 '불로장생, 건강과 아름다움의 약속'이다. 약초를 제대로 알고 섭생하면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약속이다. 제주에는 오름과 산 들녘을 누비며 호연지기와 건강을 키워내려는 이들이 수만명에 이른다. 이는 제주의 산천을 이해하고, 그 속에 감추어진 제주적인 가치에 대한 눈 뜸을 위한 몸짓이기도 하다. 약초에는 건강을 위한 효용만 들어 있는게 아니다. 그 속에는 풀을 삶의 동반자로 삼아 온 제주인들의 문화와 생활사도 함께 깃들어 있다.
이 책은 그것을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망외(望外)의 친절한 가이드가 되리라 믿는다. 그래서 제주에 자생하는 약초와 국내·외 녹색건강산업의 흐름, 나아가 제주문화도 함께 꿰차는 한방전문가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면 한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