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관심 있는 도민들의 귀와 시선은 멀리 미국 워싱턴으로 향했다. 이미 본보를 통해 전해진 것처럼 그 날 워싱턴D.C에 소재한 아메리칸대학에 '한국정원'이 문을 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곳 1만3천여㎡의 부지에는 우리나라의 나무와 꽃, 야생식물, 민속문화의 상징물이 심거나 세워졌다. 미국의 심장부(心腸部에 이와 같은 '한국정원'이 들어선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관심의 앵글을 좀 더 '한국정원'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요소로 맞출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제주산 왕벚나무와 한라산 구상나무, 진달래, 산철쭉, 제주상사화, 제주조릿대와 같은 제주 자생식물들이 대표 식물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우리 누이들을 시집 보내는 것과 같다. 한국정원에는 제주자치도가 기증한 돌하르방과 정낭도 함께 설치됐다. 워싱턴 속에 '작은 제주섬'이 새로 생겨난 것이다. 제주도의 문화·식물사에 길이 기념할 만한 하나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한국정원'이 아메리칸대학에 들어서게 된 배경에도 포커스를 맞출 필요가 있다. 이 대학 교정에는 '한국벚나무(Korea Cherry Tress)'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빗돌에는 '1943년 4월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박사가 한국에서 선교생활을 했던 아메리칸대 폴 더글러스 총장과 함께 한국독립을 원하는 지성인들의 의지를 담아 심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당시 워싱턴시 포토맥 강변에는 왕벚나무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를 20세기초 일본 도쿄시장이 기증한 벚나무라고 해서 '제페니스 체리 트리'로 불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이승만 박사가 왕벚나무의 원산지(原産地)는 한국이라며 미국정부에 '코리언체리'로 바꿀 것을 제의했고, 아메리칸대에도 4그루의 왕벚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2008년 재미 한국인 식물학자이자 벚나무 전문가인 정은주 박사와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산림연구소의 왕벚나무 연구의 권위자인 제주출신 김찬수박사에게 전해졌다. 이들은 현지를 방문 DNA분석과 표본 등을 조사한 결과 이 나무의 원산지가 제주산 왕벚나무임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김 박사의 왕벚나무연구에 관한 열정은 개인적으로 한라산탐사를 하며 접하게 되었다. 10여년간 만날 때마다 왕벚나무 이야기가 빠진 적이 없었다. 필자가 왕벚나무에 관한 교양을 쌓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와 술잔을 나누며 지겹도록(?) 들은 특강 덕분이기도 하다. 그런 열정과 애향심이 제주를 테마로 한 '한국정원'을 낳은 것이다.
그런데 며칠전 중앙 메스컴에는 참으로 놀랄만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외교통상부 접견실에 걸린 대형 벚나무 사진을 두고 담소를 나누던 외국 정부 요인이 우리 당국자에게 이 나무의 이름을 묻자 서슴없이 "사쿠라"라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 기자는 일본의 국화와 다름 없는 '사쿠라' 사진을 외교통상부 접견실에 걸었다며 호통을 치는 기사였다. 제주산 왕벚나무에 관한 무지와 편견(偏見)이 낳은 웃지 못할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나라를 잃은 시절에도 왕벚나무의 국적과 본명을 되찾기 위해 발버둥치던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나무를 "사쿠라"라는 한마디로 날려버리는 얼 빠진 외교 당국자와 그것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사진 철거 운운하는 기사가 버젓이 나오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어디 이 뿐인가. 한국의 정원, 그러나 실상은 제주의 정원이 문을 열던 날 제주를 대표하는 제주자치도 당국자와 도의원들은 한 명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툭하면 외국을 무시로 드나드는 그들이 아닌가. 그러면 초대 받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그까짓 사쿠라"라고 여겼던 것일까. 어느 경우도 씁쓸한 일이다. 이럴 때마다 제주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이들은 누구일까를 생각케 된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