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규칼럼]작은 책이 던지는 '분노의 화두'

[강문규칼럼]작은 책이 던지는 '분노의 화두'
  • 입력 : 2011. 06.14(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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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 올해초부터 프랑스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지난 주 한겨레신문에 소개된 '분노하라'는 부록을 제외하면 13쪽에 불과한 초미니 책이다. 하지만 발간 5개월여 만에 20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저자인 스테판 에셀이 95세(1917년생)의 노인이라는 점이다. 흥미진진한 회고담이나 소설도 아니다. 날카롭고 명료(明瞭)한 어휘로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비판하며 세계 곳곳에 분노의 화두를 던지고 있으니 놀랍다.

백수를 눈 앞에 둔, 그러나 아직도 뜨거운 가슴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이 노인은 누구인가. 그는 2차대전 당시 에꼴 노말이라는 파리고등사범학교를 다니다 레지스탕스 운동에 뛰어든 엘리트청년이었다. 프랑스가 승전해 해방을 맞자 외교관으로 일하며 유엔에서 세계인권선언의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청년시절 유태인과 동성애자, 정신이상자, 집시들에 대한 나치의 인종청소의 욕망에 대한 저항에서 역사의 흐름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분노의 힘이 바로 줄기찬 삶의 원동력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유언처럼 세상을 향해 말하고자 하는 목소리는 과거의 회고담이 아니다. 자본을 위한 무한자유를 위해, 인류가 자신들의 존엄과 생명을 조금씩 헌납해야 하는 '신자유주의 복음'에 관한 허구(虛構)와 폐해를 고발하고 있다. 그리고 천박한 자본의 힘에 우리를 굴복시키려는 권력에 분노하고, 그 분노의 힘으로 내 삶과 시대를 움켜쥐고 살아갈 힘의 동력을 발견하라고 일깨우고 있다.

이 책을 펼치며 우리는 한국사회, 또는 그 작은 울타리 속의 제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10여년 전부터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는 그 빛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부자감세정책이나 국가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수도권 중시, 지방 홀대'정책,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조화로운 공생을 표방하면서도 더욱 악화되고 있는 '갑과 을'의 관계, 학생과 학부모들은 해마다 등록금 마련에 허덕이는데 교육입국을 빙자하며 축재에만 혈안이 된 일부 대학들도 우리가 분노의 시선을 보내야 할 대상들이다.

사람들은 왜 이 책에 열광하는가. 무엇이 오랜 인생을 살며 모든 것이 쇠잔해진 노인이 던지는 메시지에 귀기울이며 공감하는가.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며 맹목적으로 권력의 논리에 따르거나 침묵(沈默)해서는 안되는 그 무엇이 우리 사회에, 나아가 지구촌 곳곳에 쌓여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가 역사의 흐름에 뛰어든 동기는 인종청소에 광분한 나치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오랜 세월 속에서 그의 시야는 점점 넓어졌다. 백수를 바라보는 지금 그의 마음은 인류와 지구촌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한 갈구로 채워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할 핵심 키워드가 '분노하라'임을 유언처럼 일깨워주고 있다.

만주벌판을 풍찬노숙하며 독립운동을 벌였던 애국지사들도 그런 간절한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백범 김구선생은 그것을 '한 없이 갖고 싶은 것은 문화대국'이라고 했다. 군사대국도, 경제강국도 아닌 긍지와 품격이 높은 나라를 위해 가족과 개인의 입신양명을 버리고 기꺼이 민족의 제단에 희생양으로 바쳤다. 난수표처럼 엮어진 '4·19, 5·18, 6·10'시대의 한복판에서 민주화를 외쳤던 이들에게도 그런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꿈의 행진은 미래를 향해 나가고 있는가, 아니면 역풍(逆風)을 만나 뒷걸음치고 있는가. 작은 책 '분노하라'는 일상 속에 매몰된 시각에서 탈피, 이웃과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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