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열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박종원 감독의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년).
이문열 신경숙 박범신 조세희 작품 등 제시문 활용
인간이 추구하는 권력·자유의 속성 등 견해 요구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소설(小說)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 산문체의 문학 양식. 일정한 구조 속에서 배경과 등장인물의 행동, 사상, 심리 따위를 통하여 인간의 모습이나 사회상을 드러낸다."
이러한 용어의 정의를 살피지 않더라도 누구나 소설 속에서는 다양한 인간들의 삶의 모습과 다양한 삶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인간들이 겪는 사건들을 통해 한 개인으로서의 삶의 문제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고발하거나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 이러한 것이 논술고사에서 소설을 제시문으로 활용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면 대입 논술고사에서 소설 작품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살펴보도록 하자.
▶소설 내용 현실적 문제와 연관 시켜
경희대학교의 2009학년도 수시 2-1학기 인문계 I 논술고사에서는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제시문의 하나로 인용되었다. 주인공인 '나'가 석대의 비행을 고발하려는 생각을 했지만 오랫동안 굴종의 혜택을 입어왔고, 피해를 입은 학생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고, 담임선생님도 석대의 비행을 밝혀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발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부분이 인용됐다.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다른 제시문은 중국의 멜라민 파동과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예로 들어 오늘날 소프트파워를 얻기는 어렵지만 잃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이 두 제시문과 관련지은 논제는 "제시문 [다]의 화자인 '나', [라]의 중국과 미국은 권력의 속성과 관련해 어떠한 특징과 차이를 보이는지 논술하시오. (301자 이상 400자 이내, 15점)"이다. 이 논제에서 보듯이 소설 작품 속에서 제기한 삶의 문제와, 중국과 미국에서 발생한 문제를 권력의 속성과 관련지어 논술하도록 하고 있다.
고려대학교가 2008년 11월 22일에 실시한 2009학년도 수시 2 인문계 논술고사의 제시문으로 김성한의 단편소설 <개구리> 전반부에서 인용한 글이 나왔다. 이 작품의 전반부는 건국대학교 2003학년도 수시 1 '국제화특기생 특별전형 논술문제'에도 인용된 바가 있다. 이에 관련된 고려대학교의 수시 논술고사문제는 "논제 Ⅱ. 제시문 (나)의 내용을 바탕으로 제시문 (다)에 나타난 '얼룩이'와 '초록이'의 견해를 비교하고, 제시문 (가), (나), (다)를 참고하여 자유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 (50점)"이다.
제시문 (다)는 인간 세상을 우화적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에 이 작품을 통해 작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다른 제시문들의 내용과 관련지어 계몽, 자유, 자율이라는 관점에서 독해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계몽, 자유, 자율'은 도덕교과서에 나오는 개념들이기 때문에 평소의 학교 공부를 바탕으로 발전적 사고를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제시문 (가)는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라는 글이다. 계몽의 주체로서 인간이 이성을 사용하는 자율성의 문제와 타율 회귀의 유혹들에 대한 부단한 거부 의지의 관점에서 계몽의 본질을 밝히고 계몽이 이루어져야 자유를 누린다는 견해를 드러낸 글이다.
제시문 (나)는 필립 페팃(Philip Pettit)의 <공화주의>에서 인용해서 재구성한 글이다. 자유의 유형을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이 정의한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그리고 제시문의 저자가 대안으로 이야기하는 '지배 없는 자유'로 나누어 말한 다음, 간섭과 지배는 별개의 개념이기 때문에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간섭 없는 지배'와 '지배 없는 간섭'이 가능하며, 간섭 없는 자유와 지배 없는 자유는 서로 다른 이상이라고 말하는 글이다.
그리고 제시문 (다)의 인용된 부분에서는 질서를 위해서는 자유를 희생할 수 있다고 주장과 질서를 위해 자유를 희생할 수 없다는 주장이 맞선다. '지배 없는 자유'를 바라는 초록이를 제외하고 모든 개구리들이 '간섭 없는 지배'를 바라는 얼룩이의 의견에 부화뇌동한다. 이 개구리들은 즉자적 민중이며 의타적 존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계몽이 요구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위의 두 예에서 봤듯이 우리 인간 사회의 현실을 우회적으로 고발하고 비판하는 소설들이 제시문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설들을 활용하여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권력, 자유 등의 속성이나 의미 등에 관해 개인적 견해를 진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유토피아 위한 폭력행사 정당한가"
최근 2개년 간 논술시험에서 소설 작품들을 인용하여 출제한 경향을 더 살펴보자.
건국대학교는 2010학년 수시1차 인문계 논술고사에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활용하여 '소통의 양상을 살피고, 깊은 이해와 공감이 있는 진정한 소통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는 문제를 냈으며, 2011학년도 수시1차 인문계 논술고사에서는 톄닝의 <도망>을 이용하여 '타자와의 공존 방식'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도록 하는 문제를 냈다.
고려대학교는 2011학년도 인문계A 수시논술(오전)에서 박범신의 장편소설 <나마스테(2005)>에서 발췌하여 활용하였다. 출제의도와 문제해설을 보면, '나마스테'는 '안녕하세요'처럼 서로 만나고 헤어질 때 두루 건네는 인사이자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의 시작을 알리는 네팔어 표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던 과거의 우리들과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을 중첩시키며,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냉혹한 시선을 꼬집고 나아가 그 정당성에 물음을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용된 제시문은 "'나'가 외국인 노동자 카밀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서, 로스앤젤리스 폭동으로 인해 아버지와 막내 오빠를 잃은 '나'가 사건의 경위와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말하고 생각하는 대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을 활용한 논제는, 혼종 현상의 의미와 더불어 혼종성이 함축하는 의의와 한계에 대한 규범적인 설명을 한 글과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서양 세력의 유입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어서 인종적, 문화적 혼종을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것으로 해석 가능한 글을 근거로 하여 제시문 속의 "'나'가 생각하는 로스앤젤레스 폭동의 원인들에 관해" 논술하라는 것이다.
숙명여자대학교는 2010학년도 수시2차 인문1 논술고사에서 조세희의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를 발췌하여 칼 포퍼의 <추측과 논박>의 입장에서 "'아버지가 꿈꾼 세상'에 대하여 평가"하는 문제를 출제하였다. 칼 포퍼의 <추측과 논박>에서는 유토피아주의가 합리주의에서 나왔지만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합리주의와는 아주 다른 합리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칼 포퍼는 어떤 이상적 상태를 추구하는 유토피아적 방법은 폭력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동일한 유토피아적 목적을 공유하지 않는 상대를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유토피아적 건설기가 사회적 변혁기가 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시기의 변화를 사람들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길 수 있게 된다. 이때 유토피아주의자들은 합리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 유토피아로의 접근이 어려워진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논술문제는 유토피아, 즉 이상사회 건설을 위해 행사하는 폭력과 같은 강제 행위가 정당한가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문제라 할 수 있다.
<강영선·제주중앙여고 교사·제주도교육청 톡톡튀는 논술학교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