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삽시다]해녀 인생 60년 고산옥씨

[당당하게 삽시다]해녀 인생 60년 고산옥씨
"물질 그만두고 싶지만… 아직은"
  • 입력 : 2011. 06.29(수) 00:00
  • 김명선 기자 nonamewind@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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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해녀 일을 해오며 몸이 많이 상한 고씨. 자식들은 부모 걱정에 그만 쉬라고 하지만 고씨는 행여나 자신이 짐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물질을 계속하고 있다. /사진=김명선기자

18살때 속초서 군인신분으로 시작
몸 고달파도 자식 생각에 일터로

"60년이란 세월을 해녀라는 직업을 갖고 살아왔는데 아직도 먹고 사는 게 걱정이 돼 물질을 계속해야만 하네요."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사는 고산옥(76·여)씨. 이제 물질을 그만둘 나이도 됐지만 고씨는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자식들에게 의지하기 싫다"면서 아직도 해녀 일을 하고 있다.

고씨는 16살 때 처음으로 물질을 시작했고 18살때부터는 강원도 속초, 경북 포항, 경남 통영, 울산시, 울릉도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물질을 했다.

제주 4·3의 아픔이 끝나 갈 때쯤부터 물질을 시작했다는 고씨는 "당시 제주에서는 해녀가 채취한 미역과 해산물 등의 가격이 워낙 낮아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시기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씨는 18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강원도 속초로 원정 물질을 하러 나섰다.

그 당시 속초 해안가는 군인 이 외에 민간인은 출입할 수 없는 곳이라서 고씨와 함께 속초로 물질간 해녀 모두가 군인신분으로 물질을 했다. 해녀가 채취하는 물건을 군인에게 넘기고 이들은 수산업자에게 판매를 했는데 해녀가 3, 군인이 7의 비율로 나눠가졌다고 설명했다.

고씨는 22살이 되던 해에 직업군인이었던 남편 故 임좌봉씨와 결혼해 슬하에 6명(5녀 1남)의 자녀를 뒀다.

고씨는 "나이가 젊었을 때는 자식들 뒷바라지에 모든 신경을 쓰다보니 돈을 모을 기회가 없었다"며 "자식들도 어느정도 성장하고, 남편도 군인을 퇴역한 후에 외국 상선의 선장으로 취업을 했기에 돈을 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얼마 없어 남편이 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했고, 병원비 등으로 모아뒀던 돈을 다 써버렸다"면서 지금까지 고달팠던 삶을 떠올렸다.

고씨는 "60년 해녀 일을 해오면서 몸이 많이 상했는데 자식들은 부모 걱정에 그만두라고 성화"라며 "자식들도 자신들의 자식을 키우기 위해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나마저 의지하면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물질을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고씨가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금액은 기초노령연금 9만여원과 제주자치도에서 해녀에게 지원하는 외래진료비 등이 있는데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액수다.

도내에 남아 있는 5000여명의 해녀 대부분이 고씨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들에 대한 지원대책이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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