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국립공원 관리권이 중앙으로 환원케 되었다는 본지의 특종기사 (7월 7일자)를 접하며 엉뚱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607년 전 어느 봄날의 제주풍경이다. 조선시대를 개국한 태종은 1404년 5월 지금까지 제주에서 세습해 내려오던 토관직인 성주(星主)와 왕자(王子)를 폐하고 좌도지관(左都知官), 우도지관(右都知官)으로 고쳤다. 이로써 명칭으로나마 존속돼 왔던 탐라국의 존재는 완전히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제주는 명실공히 중앙에 예속되는 결과를 낳았다.
어느 봄날 소식을 접한 제주사람들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어떤 이들은 성주 호칭의 폐지가 일시적이고 생활에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 빼앗긴 성주 호칭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오히려 조정은 조선조 5백여년 간 성주의 후예인 고(高)씨 성을 가진 이들에 대해 단 한번도 제주목사로 임명하지 않는 철저한 배제정책으로 일관했다.
한라산국립공원 관리권도 그런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 한라산과 제주는 별개로 나눌 수 없는 제주정체성의 기틀이다. 성주제가 탐라역사의 상징이라면 한라산은 제주인들의 정신적 모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한라산 관리권이 중앙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더구나 환경부를 비롯한 관련부서는 1970년 한라산 관리권이 제주도로 이양된 후 40년 가까이 이를 다시 환원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런 이들이 순순히 관리권을 다시 제주로 돌려주려 할 것인가. 도정이 저지른 한번의 치명적 실수가 가져오게 될 후유증은 머지않아 심각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한라산 관리권에 관한 제주사회의 반발을 중앙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타심(排他心)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필자를 비롯한 10여명의 전문가와 취재팀이 1998년부터 10년 가까이 한라산탐사에 나섰다. 그 때 험준한 계곡을 타고 오르며 수도 없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그럼에도 행정기관의 지원도 없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한라산의 가치를 발굴·정립·선양하기 위한 일념 때문이었다. 이러한 열정에 의해 11권의 한라산 총서를 펴냈고, '한라산연구소'도 설립됐다. 제주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지역과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제주사회의 열정도 다르지 않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 산하 어느 국립공원에서 이와 같은 일들을 스스로 성취해 나가고 있는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 어떤 국립공원이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는 것을 반대하거나 케이블카를 놓을 때 제주는 어떠했는가. 오히려 한라산을 세계적인 산으로 선양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경제적 이유로 산이 파괴되는 것을 반대해 왔다. 한라산을 위해 기꺼이 경제적 이득을 포기하고 영원히 후손들에게 오롯이 물려주겠다는 제주도민들의 긍지와 사랑이 한라산 제단(祭壇) 위에 헌신하도록 한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 관리권이 넘어갔을 때도 그런 자발적·적극적 참여와 헌신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래서 한라산 관리권 환원은 단언코 불가하다.
관리권이 중앙으로 넘어 가는 과정에서 제주도정이 보여준 행태는 참으로 실망스럽다. 지방분권위가 세번에 걸쳐 제주도에 의견을 냈지만 도정은 이 문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아무런 의견도 제시하지 않았다. 한라산 관리권이 넘어가든 말든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 여겼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도정은 참다운 곳간지기로서의 능력과 책임감을 갖고 있는지 묻게 된다. 1년 가까이 세계7대경관 선정을 위해 올인하면서 정작 핵심적 장치인 한라산 관리권은 중앙에 쉽게 넘겨주는 이 기막힌 역설적 상황을 우리는 또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강문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