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면 용수리 뱅덕물저수지 주변 위치
부모님에게 편지쓰는 조건으로 무료 사용
올레 13코스의 한경면 용수리 뱅덕물저수지 근처를 걷다보면 다채로운 색상의 토관 더미가 눈길을 끈다. 올레꾼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1~2인용 숙소다. 높이 1.5m, 길이 3m의 둥그런 토관 내벽에는 나무판자가 이어 붙어있고 깨끗한 침구가 잘 개켜있다. 바닥에는 전기장판이 깔려있어 따뜻하다.
객실 네 개를 갖춘 '토관 호텔'인 셈이다. 호텔 이름은 '제주모모'. 이곳에는 비수기인 요즘도 매일 두명에서 세명정도가 머물다 간다. 무료숙소를 이용하는 조건은 머무는 동안 부모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용수리 저수지 근처의 '토관 호텔'
제주모모를 운영하는 이는 중견기업의 임원이던 오윤하씨. 오씨는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를 거치면서 회사와 함께 무너졌다. 이혼과 함께 병까지 얻었다. 제주시내에서는 "미쳐버릴 것 같아"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육지로 가기는 싫고, 제주시내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마을로 옮기기로 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 저수지 근처의 버려진 빈집에 들어왔다.
노모는 아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 것으로 아들을 위로했다. 동네 주민의 권유로 양봉을 시작했다. 얼마 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어머니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졌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자신이 저지른 불효를 갚을 길이 없었다. 젊은 사람들에게 부모가 살아 계실 때 부모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게 해주고 싶었다.
집 근처를 지나는 젊은 올레꾼들이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무료숙소였다. '제주모모'도 '어미 모(母)자를 붙여 만든 이름이다. 1년 동안 준비해 지난 1월 문을 열었다. 운영비용은 전기료 정도로 한달 담뱃값 수준이다. 10년 전 담배를 끊었으니 돈 들어가는 게 없는 셈이다. 침구 세탁은 이곳에서 새로 만난 부인의 세탁소에서 해결해 돈이 들지 않는다.
반응도 좋다. 부모에게 쓴 편지를 '제주모모 우체통'에 넣으면서 올레꾼들은 오씨에게도 감사편지를 남기고 떠난다. 이제는 객실을 네개 더 늘이고, 샤워실과 화장실, 주방이 있는 건물 한 채를 지을 계획이다. 2000만원 정도의 비용은 내년 한 해 꼬박 양봉과 감귤 농사로 돈을 벌어 충당할 생각이다.
그는 효소를 만들 옹기도 120여개나 모아놓았다. 주변에 널려있는 삼백초, 비단풀, 쇠비름, 줄풀, 엉겅퀴 등 몸에 좋은 풀로 효소를 만들어 보급하고 싶어한다. 자신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도 효소였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무료다.
철저한 실패도 그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오히려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도록 하는 기회와 원동력이 됐을 뿐이다.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