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인의 장수음식을 찾아서](5)제주 전통 장류

[제주인의 장수음식을 찾아서](5)제주 전통 장류
섣달 그믐에 담근 된장은 이듬해 가족의 건강반찬
  • 입력 : 2012. 03.06(화) 00:00
  • 김명선 기자 nonamewind@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가마솥에서 8시간동안 장작불을 떼 푹 삶은 메주콩. 우리네 추억 한켠에 남아있는 이 풍경엔 가족의 건강을 기원했던 어머니의 진한 사랑이 녹아 있다. /사진=김명선기자

"먹을거리 귀하던 시절엔 된장 담그는 날 손꼽아
메주는 짝수로 만들어야 집안운이 좋다는 속설도"

모든 음식 맛을 좌우하는 장류(된장·고추장·간장 등). 제주에서는 장을 담그는 날을 택일까지 해가며 정성을 들였다.

이 모두가 가족의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기원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오랜 세월 풍습으로 이어져 오는 것이다.

제주에서 장 담그는 시기는 콩 수확(양력 10월 초부터)이 끝나고 11월 중순에서 말일까지다. 보통 날을 보고 장을 담그는데 가족의 생일이 끼지 않는 날(식구의 본명일(本命日)이 없는 날)을 택했다. 또 잉일(범날)과 뱀날을 피하기도 했다.

특히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날(음력 12월 30일쯤)'에는 날을 보지 않아도 된다고 하여 제주 전역에서는 이 시기에 된장을 담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먹거리가 없고 귀하던 시절 어머니가 장을 담그기 위해 가마솥에 콩을 삶는 날이면, 그 옆에서 다 익기를 기다리다가 간식으로 익은 콩을 먹었던 기억은 이제 우리들 기억속에나 남아 있는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또 기계방아가 생기기 전 메주를 만들기 위해 새 초신이나 새 버선을 신고 나일론 자루에 담아 지근지근 밟았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예전 도내 가정에서는 장을 담그기 위해 가족 수에 따라 5~10말(1말=약 18ℓ)의 콩을 메주담그기에 사용했다. 어른 한 사람의 일년치 된장 분량이 콩 2되(약 3.8㎏)였다는 기록(제주도의 식생활·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1995년 발간)만 보아도 당시(1960~1970년대) 제주 사회가 대가족 사회였음을 엿볼 수 있다.

▲네모나게 빚어 짚으로 엮은 메주를 천장에 매달아 말리고 있다.

메주 또한 짝수로 만들었는데 이는 '짝수로 만들어야 집안에 운이 좋다'는 속설 때문이다. 반면 메주가 검게 되어 장맛에 이상이 올 경우에는 집안에 우환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장을 담근 여성들의 근심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가는 장류를 담기보다는 유통매장 등지에서 구입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도내 일부 가정에서는 "가족의 건강을 직접 챙기겠다"면서 메주를 쓰고 장을 담그는 여성들이 남아 있다.

올 가을과 겨울에 가족의 건강과 직결된 장 담그기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 싶다.

다음은 장류 담그는 과정이다.

▶메주 제조=콩을 씻고 이물질을 골라낸 다음 물에 10시간 정도 불린다. 삶을 때는 물을 가마솥 밖으로 넘기지 않도록 물의 양을 조절하고, 다 삶아질 쯤이면 물이 거의 없어져야 한다. 네모난 메주를 3~4일정도 띄운 뒤, 마루나 부엌, 찬방 등지의 바람이 잘 통하는 천장에 매달아 45~60일정도 띄우면 된다.

▶간장 제조=간장을 담글 때는 콩(1말), 물(1허벅), 소금(3되)의 비율이 중요하다. 메주를 소금물에 담글 때는 물기를 빼는데 보통 전날 저녁에 씻어서 물기를 빼고 다음날 담근다.

▶된장 제조=메주를 손으로 으깨는데 이때 너무 빡빡하면 간장을 조금 넣고 으깬다. 으깬 된장을 준비한 항아리에 꼭꼭 눌러서 틈이 생기지 않게 담고, 가제천을 한겹 덮은 다음 소금으로 다시 한번 덮어준 다음 항아리 입구를 가제천이나 창호지 등으로 씌워서 항아리를 덮으면 된다.

▶막장=제주에서 여름철 쌈장이나 냉국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막장. 메주를 씻은 다음 장을 담그지 않고, 메주를 잘게 부수어서 햇빛에 말린다. 소금물을 깨끗하게 거른 다음 메주 부순 것과 서로 섞어 바로 된장을 만든 뒤 약 3개월정도 익혀 먹으면 된다.

콩의 풍부한 영양 세계가 주목
제주선 일찍이 된장을 여러 음식에 사용


도내 가정에서 된장을 담그는 날을 정하면 부정한 것을 보이면 안되므로 상가에 가지도 않았고, 월경이 오는 여자가 장 담그는 것을 피했다. 또 비가 오지 않고 화창한 날을 택했다.

이처럼 장을 담그기까지 온갖 정성을 들이는 제주여성의 모습은 올바른 식생활이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는 척도라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느껴왔기 때문이다. 또 장담그기를 한 해 농사에 비유해 장 담그기가 끝나면 "한 해 농사가 끝났다"고 할 정도로 힘든 과정이었다.

최근 콩의 영양이나 다양한 쓰임새를 두고 '기적의 산물'이라 부르고 있다.

콩에는 단백질이 38%나 들어 있어서 곡물(밀 10.5%, 조 10.5%, 옥수수 8.2%, 쌀 6.2% 등) 가운데 으뜸이다. 그래서 육류가 부족한 지역에서 단백질 공급원으로 장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콩의 특성이 알려지면서 웰빙시대를 맞은 지금, 콩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식재료로 떠올랐다.

콩이 발효되면서 만들어지는 미생물은 특수한 단백질을 분비해서 몸속의 혈전을 분해한다. 또 혈액 속 영양소와 산소의 운반을 원활하게 해서 뇌혈관·뇌출혈 등의 질병 유발을 예방하고, 체내에 콜레스테롤이 축적되지 않도록 하는 효능을 지니고 있다.

제주에서는 이런 콩의 효능을 알고 모든 음식에 간장·된장·고추장·막장 등의 장류를 사용해 왔다.

돼지고기를 삶거나 자리물회 등의 요리를 할 때도 특유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장을 썼고, 전국에서는 유일하게 막장을 풀어 여름철 냉국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김성옥 고내촌 대표는 "발효식품의 경우 습도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잘못 관리해 몸에 좋지 않은 파란·검정색 곰팡이가 생길 경우 이를 씻어내는 일도 일이지만 장맛도 좋지 않아진다"며 "장에 있는 좋은 균이 계속해서 발효 작용이 일어날 수 있도록 관리에 힘을 쓰면 맛 좋고, 향 좋은 장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이어 "요즘은 된장이나 고추장·간장 등을 유통매장 등에서 구입해서 사용하는데, 실온보다는 냉장 보관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1090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