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강정에 다녀왔다. 제주민예총이 주최하는 '강정마을 4·3해원상생굿'을 보고 왔다. 봄볕 따스한 주말에 굿판에서 서성이다 왔다.
나는 1994년 여름에 강정에서 3박 4일 머물면서 마을 이곳저곳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제주대 국문과 학생들의 학술조사에 동행한 것이었다. 강정초등학교에 숙소를 정했으나 갑작스레 교실 보수공사가 진행되는 바람에 운동장 한쪽에 천막을 쳐 놓고 거기서 숙식을 해결했었기에, 강정은 여러 장면들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추억 속의 마을이 되었다. 8월의 나무그늘 아래서 마을 어르신들에게 설화를 듣던 일, 조사 도중 짬을 내어 강정천에 가서 은어튀김을 사먹던 일, 천막 옆에서 별 보며 술잔을 기울이던 일 등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특히 너무 더워서 자정 넘은 시간에 아끈내에 가서 발가벗고 멱 감는 객기를 부렸던 일은 꽤나 짜릿한 추억이다.
그때 본 강정은 물 좋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넉넉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세월이 한참 흘러 2006년에는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과연 강정의 진가가 인정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이듬해에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로 지정되면서 강정은 자연생태우수마을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되었다. 마을공동체가 깨지고 아름다운 자연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두어 번 강정을 오가면서, 작가회의의 글발글발평화릴레이의 일환으로 일주도로를 걸으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18년 전의 추억을 떠올리며 무거운 발걸음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나이든 강정사람들은 작금의 사태를 보면서 4·3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강정마을에서는 4·3으로 인해 모두 105명이 목숨을 잃었다. 1948년 11월 16일 '큰당밭'에서 10여 명, 11월 21일 '왕대왓'에서 30여 명, 12월 17일 '메루동산'에서 10여 명 등의 집단 총살도 있었다. 무자·기축년의 제주섬에서 이러한 죽음은 그다지 특별한 게 아니랄 수도 있다. 하지만 해군기지 문제로 다시 절망적 상황을 겪고 있는 마을의 그것이기에 우리가 각별히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강정은 4·3이다」라는 연작시를 발표하고 있는 김경훈 시인이 '옛날과 그대로다'라는 부제가 달린 그 첫 작품에서 "응원경찰/통행금지/해안봉쇄/체포연행/예비검속/생명파괴/대량학살//제주4·3의 피와 살과 뼈로 기초된 대한민국에/이제는 강정이라는 처녀 하나 제물로 바치라 한다"라고 했음에 우리는 귀 기울여야 한다.
굿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가 다 되도록 계속되었다. 서순실 심방이 희생자 105명의 이름을 일일이 부를 때, 망자의 목소리로 영게울림을 할 때 유족과 주민들은 물론 굿판의 많은 이들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쳐야만 했다. 굿판이 끝나고 모든 참석자들은 마을회관 앞을 돌아 강정포구 방사탑(防邪塔)까지 풍물을 따라 춤추며 이동했다. 포구 서쪽으로는 해군기지 건설현장을 높다란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거기에는 구럼비바위와 함께 붉은말똥게, 진주담치, 물냉이, 벌노랑이, 물솜방망이, 염주괴불주머니, 갯장구채 등도 갇혀 있을 터였다. 과연 우리가 사악함으로부터 그것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김경훈 시인은 「4·3은 강정이다」 다섯 번째 연작에서 희망을 노래한다. '다른 점 하나'라는 부제의 그 시는 이렇게 역설한다.
"어디로든 길이 막혀 온통 절망과 죽음뿐이던/그 4·3과는 달리/강정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노래한다/구럼비 바위 속 흐르는 할망물도 춤 춘다." <김동윤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