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목욕탕 담론

[하루를 시작하며]목욕탕 담론
  • 입력 : 2013. 01.16(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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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지인들은 사우나를 다녀오면 심신의 피로가 풀려 좋다고 한다. 그러나 난 마음의 평정을 잃을 때가 많다. 그래서 사우나를 갈 때면 다짐을 한다.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하리라. 하지만 목욕탕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분명 샤워기 앞에 사람은 없는데 자리가 없다. 대신 목욕바구니들이 주인인양 자리를 차지해 있다. 그래도 그 틈을 잘 뒤져 주인 없는 샤워기를 겨우 붙들고 앉는다. 그런데 이런 샤워기는 백발백중 물의 수압이 약하거나, 온도 조절이 자유롭지 못한 불량한 것이다. 그래도 감지덕지 머리를 감고 때를 밀고 샤워를 끝낼 즈음 주변의 목욕바구니 주인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 분들이 차지한 샤워기는 경쾌할 정도로 물이 잘 나온다. 하지만 이 분들은 몇 번 헹구고 나면 다시 바구니만 남겨둔 채 사라져버린다. 더욱이 그 중에는 샤워기에서 물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경우도 있다.

절전형샤워기라 몇 초 후면 잠겨야 정상인데 누르는 압이 세서 고장이 나면 쉼 없이 물이 새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쓰는 이 없이 샤워기에서 물이 계속 나와도 신경 쓰는 이가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이런 샤워기들을 당겨대는 것은 내 몫이 된다.

더욱이 예전 동네 목욕탕처럼 인심을 나누는 일도 드물다. 얼굴을 익히 알던 동네 사람끼리 안부를 여쭙고 어르신이 오면 도와주고, 서로 등을 밀어주는 일은 이제 거의 없다. 대신 서로에게 약간의 물이라도 튀면 신경을 곤두세우는 삭막함이 커졌다. 또한 서로를 알 수 없는 이들이 스치고 지나는 공간으로 변모하면서 그 안에 떠도는 말들은 주인도 없고 책임도 없이 흘러 다닌다.

어쩌다 땀을 빼려 사우나에 들어가면 우두커니 샤워기를 지키고 있는 목욕바구니의 주인들을 그 안에 다 볼 수 있다. 그들은 안방처럼 자리를 양껏 차지하고 쉼 없이 수다를 떤다. 인기드라마와 누군가의 사생활 그리고 최근 유행하는 건강요법과 맛있는 음식점까지 마치 여성잡지 한 권이 그 안에 다 있는 듯하다. 몇몇 목소리 큰 분들에 의해 주도되는 이야기들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온갖 카더라 통신이 확대, 재생산되는 구조다. 이곳 풍경과 젊은이들의 인터넷세상이 과히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 후배가 선거에 앞서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어머니를 겨우 설득시켜놨는데 사우나 다녀오시고 다시 돌아섰다며 투덜댔었다. 그때는 웃고 지났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니 다 이유가 있었다. 젊은이들이 SNS를 통해 담론을 형성해 갔다면 5060 이후 세대의 담론은 이렇게 사우나로 노인정으로 골목을 누비며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세대가 다른 만큼 방식도 생각도 달리 표현되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신구세대간 알아갈 기회가 점점 사라져 간다. 서로 얼굴을 맞대거나 의견을 교류할 시간이 도통 없다. 스마트 폰에 빠져 디지털 공간에서 지내는 젊은이들과 아날로그 공간에 머물러 있는 기성세대들 간의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단절이 지속될수록 세대 간 골은 점점 깊어 간다.

선거 후 승패는 갈렸다 하지만 이젠 화합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승자의 아량과 포용이 필요하다. 선거는 전쟁과 다르다. 승자가 되었다고 전쟁의 정복자처럼 굴어선 안 된다. 표가 되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정책을 펴서도 안 된다. 공평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아니 더 간단하게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된다면 48%의 국민도 받아들일 것이다. 서로 화합하고 이해하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열쇠는 멀리 있지 않다. 목욕탕과 SNS의 담론이 건강해지는 날을 바란다. <조미영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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