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을 맞아서 집으로 돌아온 아이가 온종일 빈둥빈둥. 학교를 다니기 전처럼 다시 잠을 12시간 가까이 자고, 텔레비전에 푹 빠져서 지냅니다. 그리고 도서관에 가자고 해서 데리고 가면 인터넷으로 소녀시대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그네들의 음악을 듣습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없고, 휴대폰 반입도 금지되는 학교에서 많이 굶주렸구나 생각하면서도 '어떻게 학교생활을 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부모로서 전혀 답답하지 않다면 거짓이겠지만 '놀다가 지치면 뭐라도 하겠지'생각하고 내버려 뒀습니다. 겨울방학 동안에 하고 싶은 걸 물었더니 "영화를 실컷 보고, 영어공부도 하고 싶다"고 했지요. 둘 중에 적어도 영화는 원 없이 보고 있습니다. 영화관에도 자주 가고, 교보문고에서 구입해온 명화도 열 편 가까이 보았지요. 그러면서 조금 날씬해졌던 몸이 다시 불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향아, 새해부터는 승마를 배워볼까?"했더니 "좋아"합니다. 그렇게 승마강습이 시작됐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주 말을 탔기 때문인지 오랫동안 수영을 해서인지 처음부터 자세가 좋다며 칭찬을 받은 다향이가 열심히 합니다. 승마 전후에 말의 목덜미를 토탁토닥 두드려주고, 또 쓸어주기도 합니다.
말을 좋아하는 다향이. 아니 말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 개나 고양이는 물론이고, 햄스터나 물고기, 심지어는 뱀을 봐도 예쁘다고 쫓아가는 다향이입니다. 그 아이한테 슬쩍 물어보았습니다.
"다향아, 2월 말이 되면 학교로 돌아가잖아. 그러면 다시 여름방학 때나 말을 탈 수 있을 테니까 강습만 받지 말고, 승마장에서 온종일 지내보는 건 어떨까? 교관님과 함께 지내면서 똥도 치우고, 안장을 얹었다가 내리는 것도 익히고, 말에 대해서 더 알아보는 거 말이야." 잠시 망설이던 다향이가 때때로 승마강습을 넘어서서 승마장체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홈스쿨링을 할 때가 생각났습니다. 처음엔 제자로서 동시를 외우고 쓰기, 피아노치기, 그림그리기, 영화보기, 사진촬영, 배낭여행을 하던 아이가 차츰 나의 동반자로 변모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면서 말을 한 마리 구입할까 생각했었습니다. 물론 다향이가 말똥과 목욕을 비롯한 완벽한 관리까지 도맡는 것을 전제로 말입니다. 그 준비가 되면 말을 사줄 테니까 매일 말을 타고 5km 떨어진 표선해수욕장까지 다녀오라고 했지요.
아빠 혼자서 상상을 했었습니다. '다향이의 성인식 기념으로 공동의 시집과 동화를 발간하고, 그림과 사진전을 열면 어떨까?'하고 말입니다. 물론 그것을 단기간에 한다면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작업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껏 해왔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놀이로 접근하고, 그중에 빼어난 것들만 추린다면 부담이 없지요. 그래서 '제주에 가면 말 타는 소녀시인이 있다더라', '아니 말 타는 소녀화가(사진작가)가 있다던데'는 소문이 나면 좋을 텐데.
그렇게 되면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재미있게 사는 또래의 아이들이 전국에서 찾아올 것입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다향이의 친구로서 대접할 것이고, 다향이는 어디엘 가도 반갑게 만날 친구들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 친구들은 국내에 한정되지 않고, 곧 국외로 확장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지요. 이것이 다향이가 변산공동체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가졌던 계획이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영영 멀어진 꿈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방학만이라도 열심히 승마를 하고, 또 글쓰기랑 그림그리기를 싫어하지 않는다면 다시 가능한 꿈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평양감사라도 제 싫으면 그만이라고 했으니 강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동안 해온 게 아깝기는 하지만 제 인생은 제가 사는 것이니까요. <오성근 작가·둥구나무 찻집&민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