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당굿 기록](3)와흘본향당

[제주당굿 기록](3)와흘본향당
400살 넘은 팽나무 신목 아래 정성 담은 제물 구덕
  • 입력 : 2013. 01.31(목) 00:00
  • 김명선 기자 nonamewind@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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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흘본향당 신목 아래 놓인 수많은 제물 구덕(바구니)들. 최근 단골이 줄어들면서 당굿의 명맥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김명선기자

조천읍 와흘리 위치… 제주도 민속자료 지정
음력 1월 14일 대제일· 7월 14일 백중제 열려

차츰 줄어드는 단골은 당굿 명맥 유지 빨간불

제주시에서 동남쪽으로 약 12km 지점에 위치한 조천읍 와흘리 본향당에는 수령 410여년을 자랑하는 신목이 위엄스럽게 서 있다.

▶와흘본향당=와흘본향당은 제주특별자치도문화재인 민속자료 제9-3호로 지정되어 있다.

제주에서는 마을의 토지와 마을사람들의 출생·사망 등을 관장하는 마을수호신을 본향(本鄕)이라고 하고, 이 신을 모신 신당을 본향당(本鄕堂)이라 부른다.

와흘본향당은 이 마을 주민들의 생산(生産), 물고(物故), 호적(戶籍), 장적(帳籍)을 관장했다. 이 당은 '와흘한거리 하로산당' 또는 '노늘당' 이라고도 한다.

당신은 송당 소로소천국의 열한번째 아들인 산신또로 사냥을 하는 산신(山神)이기 때문에 당굿을 할 때 산신놀이를 한다. 본향당 동쪽 처신(妻神)인 서울 서정승 따님애기 제단이 따로 마련돼 있다.

매년 1월 14일(음력)이 대제일(신과세제)이고 , 매년 7월 14일(음력)은 백중제가 열린다. 당의 제일에는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는데 커다란 신목과 제단을 중심으로 진설해 놓은 제물이 장관을 이룬다. 와흘본향당은 김순옥 심방이 남편인 고(故) 문성남 심방의 뒤를 이어 메인심방으로 굿을 집전하고 있다.

와흘본향당은 백색의 한지인 소지를 가슴에 대고 소원을 빈 뒤 나뭇가지에 매다는 풍습도 있다. 최근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소지를 제단 주변에 나무에 매달아 놓는다.

▶와흘본향당 본풀이=본풀이는 굿에서 하나의 신이 현재의 면모로서 숭앙받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일을 말한다. 와흘본향당 본풀이 표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송당 소로소천국의 열여덟 자식 중에서 열한번째 백조도령님이 성장해 한라영보에서 논흘일문도성책을 맡아 사냥을 하면서 내려오다가 기시내오름에서 발도 왼발, 손도 왼손, 귀도 왼귀, 눈도 왼눈, 왼발로 뛰며 다니는 선씨 할아버지를 만나게 됐다. 선씨 할아버지가 백조도령에게 "사람입니까. 신입니까" 물으니 백조도령은 "신"이며 "논흘일문도성책을 맡아 왔노라"고 했다. 선씨 할아버지는 "그것은 아니됩니다", "한거리당에서 와대뒷성가람실 밑에서 태어나신 서정승 따님이 자손에 장적·호적차지, 생산물고를 잡아 있어 안됩니다"고 했다. 백조도령이 "그 여자는 남편이 있느냐"고 묻고 선씨 할아버지에게 중매를 부탁하고 선을 봐서 한거리당에 같이 있게 됐으나 서씨 부인은 자손들이 돌을 잡으면 생머심귀충어리 알아구리를 받아먹으니 깨끗하지 못하다 하여 백조도령은 서씨 부인에게 바람 아래로 내려 동백자리에 좌정케 하고 백조도령은 웃판 상단으로 좌정했다.

▲와흘본향당굿을 찾은 단골들이 축원을 끝낸 소지를 사르고 있다.

▶본향당 신목의 수난=2009년 1월에는 신목인 팽나무에 화재가 발생해 가슴을 쓸어내렸다. 당시의 화재 원인은 당목에 주렁주렁 걸렸던 물색에 촛불이 옮겨 붙으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동안 마을주민들은 본향당의 신목에 형형색색 물색(제주와는 다른 형식)이 내걸려도 모두가 정성을 드리러 온 것으로 보고 출입을 허용했다.

하지만 화재로 인해 신목이 시커멓게 그을리고 천들이 녹으면서 생긴 검은 흔적들이 마을주민들에게는 상처로 남아 있다. 그래서 출입문을 열쇠로 잠그고 관리를 하고 있다. 이후로는 물색이 내걸리면 바로 수거한다.

2005년 6월에는 신목이 부러지기도 했었는데 마을주민들은 나쁜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기원제까지 올린뒤 신목을 잘라냈다.

▶당굿 사라질지도=신당에 가면 신이 상주하는 구멍 상궤·중계·하궤가 있으며, 신당의 단골 조직은 상단골·중단골·하단골로 조직돼 있다. 단골이 점차 줄면서 제주당굿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단골이 사라지면 당굿도 사라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토속신앙 형태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당굿이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골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와흘본향당의 경우도 당굿을 찾는 단골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여성이다. 이는 20~30년 후면 와흘본향당굿도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와흘본향당에서 대제일이 열리는 날 이 마을에 시집온 30대 여성이 찾았다. 본향당을 찾은 이유를 묻자 "아이들 때문"이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어 "시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정성스레 제물을 준비하고 올 한해 가족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곳에 같이 가자고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굿이 열리는 곳에 아이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대부분 본향당을 찾기전 사고 등으로 몸이 아픈 적이 있는 아이들이다. 현대 의학으로 충분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겠지만 아이들의 할머니는 심방을 통해 '넋드림'을 해야한다고 며느리에 강조한다. 이런 이유로 당굿을 찾았던 젊은 어머니들은 심방의 넋드림이 효과가 있는지 아이가 아프지 않아도 매년 이곳을 찾는다. '가족애'의 회복으로 제주당굿까지 보존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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