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막바지, 나무 가지 끝에서 살포시 새싹이 움트는 시절이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고 쓴 입춘첩도 보인다. 엊그제 관덕정에 울리던 풍물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가득하다. 봄이 왔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이 그렇게 좋다고 이렇게 봄을 좋아하는 것일까?
입춘은 달력상으로는 겨울이다. 하지만 봄기운은 완연하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입춘이 설날 전이어서 해가 바뀌지는 않았지만, 해가 바뀐 것으로 생각하였다. 12간지로 말하자면 올해 입춘전에 태어난 사람은 용띠가 되고, 입춘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뱀띠가 된다. 달력상의 공인된 첫날인 설날이 분명 새해의 시작이지만, 양기(陽氣)가 서는 입춘에도 새해의 기운을 느낄 수 있기에 새해로 생각한 것이다. 이렇듯 옛 사람들에게 '기(氣)'는 보이지 않지만 생활에 밀접하게 이어지는 중요한 관념이었다.
동양에서 양기는 동지(冬至)에 시작된다고 본다. 동지 즈음은 온 세상이 꽁꽁 얼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양기가 겨울 기운이 가득한 때 시작되는 것은 음기가 가득하면 결국 양기로 돌아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생긴 양기가 엉금엉금 기면서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드디어 입춘절기가 되어 자신의 힘으로 우뚝 서는 것이다. 어떤 잠재력이 현실로 구현된다는 것. 이 얼마나 눈물나게 아름다운 모습인가?
두 번째는 아무래도 인고의 세월을 견디는 것, 즉 기다림의 미학을 빼놓을 수 없다. 동지에서 입춘까지는 소한(小寒), 대한(大寒)의 절기가 있다. 소한, 대한 시기는 일년 중에서도 가장 추운 시절이다. 사람들은 겨울 내내 추운시절을 견딘 봄기운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것이다. 사람들이 인동초(忍冬草)를 노래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중국 당나라때 시인 여온(呂溫,771~811)은 한걸음 더 나아가 "한 겨울 추위 혹독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화창한 봄날을 보겠는가? (嚴冬不肅殺 何以見陽春)"라는 말로 차리리 겨울이 더 삭막하기를 바랐다. 바로 그 찬란한 봄을 위해…. 옛 사람들은 이렇게 봄기운을 믿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 주었다. 결국 봄은 겨울을 이겨낸 봄기운과 그것을 기다린 인간의 인내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결정체인 셈이다. 어찌 두 손 들고 환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누구에게나 봄은 있다. 그 봄에 모든 꽃을 피워 그 향기를 온 세상에 흩뿌린다. 운동선수는 20대에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시킨다. 요즘 가수들은 10대부터 두각을 나타낸다. 영화배우들은 30대 정도 되면 자신의 연기력을 인정받기 시작한다. 주옥같은 소설을 남긴 쓴 박완서 선생은 40대가 되어서야 문단에 등단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50대 이후를 자신의 봄으로 생각한다. 60대 이후에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도 너무나 많다. 이렇듯 사람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맞는 자신만의 봄이 있는 것이다. 아마 우리사회, 우리나라에도 분명 그 나름의 봄이 존재할 것이다. 그 봄을 조금이라도 억지로 앞당기려 한다면 봄기운은 힘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봄이 섰다. 스스로 아름답게 섰다. 그 거친 시간을 견디고 따뜻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섰다. 그리고 자연은 그 약한 봄을 스스로 설 수 있게 기다려 주었다. 기다림. 입춘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김새미오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