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말 1958년에 지어진 옛 제주시청사가 허물어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건물을 제주시가 매입해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옛 제주시청사는 행정 당국의 무관심 속에 금세 허물어지고 말았다.
이러한 논란은 1990년대 중반에도 있었는데,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김중업씨가 1959년에 설계한 제주대학 옛 본관 건물을 철거할 때도 이와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한라유랑단은 오래되고 낡았다는 이유만으로 철거되었거나, 허물어질 위기에 놓인 구도심의 근대건축물을 찾아 나섰다.
관덕정에서 서쪽으로 약 30m를 가면 옛 제주시청사가 있다. 최근 건물이 헐리면서 부지만 남아있다. 입구에 있는 쇠문은 굳게 닫혀 있고, 대문 기둥 옆에는 이곳이 조선시대 사창터(司倉) 였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옛 제주시청사는 1950년대 혼란기에 관덕정 인근 2549㎡ 부지에 연 면적 1707㎡ 2층 규모의 철근콘크리트와 벽돌조로 지어졌다.
현재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제주시청사와 함께 제주의 대표적인 공공건축물의 하나로 꼽힌다. 건물뿐만 아니라 장소 역시 탐라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제주도와 제주시 역사의 중심공간이자 도시발전사를 엿볼 수 있는 중요성과 상징성을 간직한 곳이었다.
이곳이 허물어진다는 소식에 역사·건축학계에서는 옛 제주시청사로서의 역사성과 근대건축물로서의 중요성 및 침체된 원도심 활성화 차원에서 이 건물의 활용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을 제기했었다.
▲제주대학교 재일제주인센터에 모형으로 남아 있는 제주대 옛 본관 건물. 김명선기자
제주대학교의 옛 본관 건물은 1996년 철거됐다. 1959년에 설계해 8년이 지난 1967년에 완공된 제주대학 옛 본관은 제주의 이미지를 반영한 듯 유려한 곡선을 자랑하던 건물로 작품성이 매우 빼어났지만 건물 확장을 위해 1995년 철거됐다. 당시 세계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로부터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은 가장 한국적인 건축가로 칭송받던 김중업씨가 설계한 건축물이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역사·건축학계는 철거를 반대했었지만, 철거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지금은 그 흔적을 사진으로만 간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옛 제주시청사 맞은편의 한 골목으로 들어가 근대건축물의 하나인 성내교회를 뒤로하고 남쪽으로 향하다 보면 현대극장 터가 있는데, 이곳은 40대 이상의 시민에게는 극장으로, 30대에게는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롤러장으로 인식되던 문화공간이었지만 허물어져 있다. 다시 동쪽으로 향하면 구 제주대학교 병원앞에는 근대병원이었던 자혜병원 건물 또한 사라진 상태이다.
박경훈 제주전통문화연구소장은 "구도심에 있는 근대문화유산적 가치가 있는 건물들이 철거되면 제주목관아 밖에 없는 '무시간'의 '기억상실증의 도시'가 된다"며 "시간은 물론 예술성을 간직한 근대건축물이 왜 소중한 것인지 도민에게 홍보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이에 한라유랑단은 전문가 그룹과 구도심 여행을 기획해 제주가 가진 문화의 우수성을 알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