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쯤 오랜 외국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친구는 달뜬 표정으로 나를 만나러 왔었다. 한국에 돌아와 너무도 좋다고,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은 대기업에 무사히 안착했고 영미권에서 자란 아이는 영어공부의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이 영어를 완벽히 구사했다. 외국인학교로의 입학이 가능했지만 한국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반학교로 전학해 왔다. 부정입학을 해서라도 외국인학교에 들어가는 요즘 보기 드문 사례다. 아이가 학교에만 잘 적응해 준다면 큰 고민은 없어보였다.
그러나 엊그제 만난 친구의 얼굴은 예전 같지 않다. 역시나 자녀교육에서 벽을 만났다. 중학생이 된 딸아이는 너무도 다른 교육시스템과 학교분위기에 사춘기까지 겹치며 종종 충돌하고 있었다. 친구의 말로는 제일 먼저 변한 것이 아이의 표정이라고 한다. 영국에서는 다양한 표정으로 말을 하던 아이가 점점 웃음을 잃어가더니 이젠 무표정해져 버렸다는 거다. 끊임없는 친구들과의 경쟁, 규격화된 규율에 생활방식을 짜 맞춰야 했다. 심지어 선생님의 눈을 보고 말하면 건방지다는 지적을 받는 우리의 교육방식이 그 아이에게는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중고생들을 보면 앞머리로 눈을 가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늘 시선을 회피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스마트폰에 열중해 있다. 소통의 부재는 이때부터 시작인 듯하다. 누군가와 눈을 맞추며 감정을 교류하거나 주변을 살피며 남을 배려하는 일은 마치 시간낭비인양 취급되는 현실이다. 그저 입시라는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리라하는 우리의 교육에서 소통은 뒷전이다.
그런데 이는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친구 역시 십여 년 만에 돌아온 한국에 적응하기가 그리 만만치 않다고 한다. 회사 일에 늘 치여 사는 남편은 귀가시간이 늦어 아이들과 마주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본 적 없던 새벽귀가가 일상이 돼버렸다. 그러고 보니 우리사회에서 아빠와 자식 간의 소통은 이렇게 단절되기 시작하는 듯하다.
또한 아파트의 이웃들도 남편의 직업과 소유한 차종에 따라 사람을 분류하듯 구분 짓는다. 학교에서 학부형들을 만나면 어디에 사는지 교육열이 어떤지를 은근히 따지며 견제한다고 한다. 같이 모여앉아 있지만 소통보다는 서로를 염탐하며 경쟁하는 듯한 분위기란다.
세상이 온통 성적과 물질만이 최고의 가치인양 여겨지는 사회가 돼 버린 지 오래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무뎌진 우리사회의 현실이 친구에게는 새삼스레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무표정해져가는 아이들의 얼굴이, 남편의 늦은 귀가시간이, 아파트 평수를 따지는 엄마들의 수다가 이상한 것이란 걸 우리는 잊고 살아왔다.
가치의 척도가 달라지다보니 세대간, 지역간, 집단간 사회적 갈등이 많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소통이다. 서로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다보면 막무가내의 일방통행은 줄어들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소통의 방법을 되찾아야 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친구와 그리고 이웃과 나누고 이야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제 개학이다. 새학기의 시작에 들뜬 아이들에게 주변과 소통하는 법부터 가르쳐보자. 친구와 장난치며 이야기하고 선생님과 자연스레 대화가 오갈 수 있다면 왕따와 자살은 줄일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곧 사회구성원이 된다. 아이들의 무표정은 우리사회 불통의 시작임을 잊지 말자.
<조미영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