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4특집/흑룡만리 제주밭담](1)프롤로그

[창간24특집/흑룡만리 제주밭담](1)프롤로그
농경문화·강인한 제주인 생명력 담은 제주문화 상징
  • 입력 : 2013. 04.22(월) 00:00
  • /강시영기자 syka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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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에서 촬영한 제주 동부지역 밭담

길이 2만2000여 km '黑龍萬里' 세계의 보물로
고려때 경계쌓기 기록… 제주 미학 정수로 평가
국가농업유산 첫 지정·세계농업유산 등재 신청
본보, 밭담 가치 발굴·보존 활용위한 방향 제시

제주의 상징 중 하나인 밭담이 후손에 물려줄 '유산자원'으로서 보전관리는 물론 브랜드로 활용해 나가는데 분수령을 맞았다. 국가중요농업유산에 이어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주도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 신청서를 제출함으로써 발표와 실사, 심의를 앞두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보존·활용을 위한 조례 제정과 제주밭담·돌담의 전수조사, 장인 지정·육성, 시범지역 지정, 전통농법·친환경농업, 단계별 관리시스템 정비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를 기획할 종합발전계획 수립에도 나선다.

제주밭담은 제주농경문화를 대변하는 살아있는 역사이자 제주인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유산이다. 한라일보가 연중기획으로 제주밭담을 주목하는 이유다. 제주밭담의 다양한 가치와 보존활용에 방점을 찍고 다양한 기획을 시도한다.

▶규모와 형태=화산분출의 산물인 제주는 돌무더기가 산재하고 바람이 많아 농업 활동을 할 수 없는 척박한 환경이었다. 제주의 돌담은 쌓아 있는 모양에 따라 외담, 접담, 잣벡담(자갈로 성처럼 넓게 쌓은 담)으로 구분짓는다. 위치에 따라서는 축담(초가의 외벽), 올렛담(초가 골목), 밭담(밭 경계), 환해장성(외적 침입 방지용), 원담(갯담, 어로용), 포제담, 산담 등이 존재한다.

화산지대의 돌을 정리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토를 만들고, 바람을 막고, 경계를 구분했으며, 우마의 침입을 막는 일석사조의 역할을 해온 것이 바로 제주 밭담이다.

밭담은 제주 전역에 분포한다. 시커먼 제주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돌담을 모두 이으면 10만리까지 간다. 제주대 고성보 교수팀이 지난 2008년 샘플조사를 통해 밝힌 제주 돌담의 총길이는 3만6000여km이고 이 중 밭담은 2만2000여km로 추정했다. 제주 돌담을 '흑룡만리(黑龍萬里)'라 부른 것은 그만큼 돌담의 길이가 매우 길다는 뜻이다. 끝없이 이어진 그 모습이 흑룡의 꿈틀거리는 모습을 닮았다 해 '흑룡만리'이기도 하다. 제주 돌담은 척박한 자연환경과 맞서 싸운 '삶' 자체이며, 제주인의 생존을 위한 버팀목이나 다름없다.

강승진 박사(제주발전연구원 연구위원)는 "제주의 대표적 경관의 하나인 밭담이 국가농업유산으로 지정됐다는 것은 밭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밭담의 역사=밭담을 쌓았다는 문헌상 최초의 기록은 약 8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탐라지에 1234년(고려 고종 21) 제주판관 김구가 돌을 이용한 경계표시를 위한 밭담 쌓기 기록이 전해진다. 하지만 제주 밭담의 역사는 제주농업의 시작과 때를 같이한다. 강 박사는 "화산섬 제주의 척박한 돌밭을 골라 경작지를 조성하면서 밭담은 자연스레 형성됐을 것"이라는 견해다.

농업활동이 척박한 환경에서 개간과 돌 골라내기를 통한 농토 확보와 사유지 경계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부분적 밭담 쌓기가 시작되고 비로소 '흑룡만리'를 형성했다. 밭담이 곡선을 이루고 바람이 많은 해안지역일수록 높게 쌓은 것은 씨앗을 하나라도 더 심기 위해, 그리고 그 씨앗이 날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가치와 대표성=제주 밭담은 제주인이 척박한 자연환경과 맞서 일궈 온 삶의 여정을 보여주는 유산이다. 바람결을 따른 곡선, 현무암의 검은색 등은 제주섬의 선과 색을 대표하는 제주 미학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문화관광부는 2006년 한국의 거주생활 부문에서 제주 돌담을 한옥, 온돌, 초가집과 더불어 '100대 민족문화상징'으로 선정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두차례 제주를 찾았던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제주를 예찬하면서 "도로변의 돌담 집과 집을 구획하는 울담, 밭과 밭을 구획하는 밭담 등은 제주만의 명물"이라고 극찬했다.

▶한계와 과제=제주밭담은 그간 제주 농업을 키워온 유산이었으나 그 가치는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 제주밭담의 국가농어업유산 지정에 이어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것을 계기로 이제 비로소 그 가치를 재조명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제주 밭담을 보존하고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제주자치도는 앞으로 관련 조례 제정을 통해 시범지역 지정 및 친환경농업과 연계, 농촌관광 등 3차산업과 연계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나갈 계획이다

특별취재팀=강시영·강경민·김지은기자

[세계농업유산이란]

FAO 주도로 2002년 도입 심사 엄격
11개국 19개소 등재·31개소 후보에
제주밭담, 5월말 동경포럼 발표 예정

세계중요농업유산은 국가 또는 지역이 사회나 환경에 적응하면서 몇 세기에 걸쳐 발달하고 형성돼 온 농업적 토지 이용, 전통적인 농업과 관련돼 육성된 문화, 경관,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세계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차세대에 계승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002년에 태동했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 등재를 주관하는데 비해 농업유산은 이탈리아 로마에 본부를 둔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주도한다.

현재 중국의 푸에 통 차 농업, 일본의 사도 따오기 공생농법 등 11국 19개 유산이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돼 있으며, 미국, 이탈리아, 러시아, 브라질, 인도 등 19국 31개소가 후보목록에 올라 있다.

등재 기준은 식량 생계수단의 확보, 생물다양성과 생태계의 기능, 전통적 지식 농업기술의 계승, 사회제도 문화습관, 특수한 토지 수자원관리로 조성된 수려한 경관 등이다. 절차는 국가 추천을 받아 입후보지 등록신청 후 현지 답사와 서류심사, 유엔식량농업기구의 심사를 거쳐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통상 2년에 한번 개최하는 심사회에서 등재가 인정되며, 등재돼도 별도의 자금지원은 없다. 등재될 경우 농산물의 브랜드화, 농업관광자원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특히 후손에 대대로 물려줘야할 '유산' 자원으로 보전관리에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우리 정부는 지난 1월 오랜기간 형성된 농어업 유산을 보전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청산도 구들장 논과 제주 돌담밭을 각각 국가중요농업유산 1호, 2호로 지정했다. 제주의 밭담이 국가 차원에서 후손에 대대로 물려줘야 할 '유산' 자원으로 조명받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가중요농업유산 제도는 오랜기간 이루어진 전통적 농경·어로행위와 그로 인해 형성된 독특한 농어촌 경관 등 전승할만한 가치가 있는 농업자원을 국가유산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제도다.

강시영기자 syka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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