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愛 빠지다]조담래 중문삼성연합의원장

[제주愛 빠지다]조담래 중문삼성연합의원장
"친구와 나눈 꿈, 이젠 현실이 됐죠"
  • 입력 : 2013. 06.28(금) 00:00
  • 문기혁 기자 ghmo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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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친구와 "나이들면 제주에서 살자"는 약속이 이제는 현실이 된 조담래 원장. 그는 의사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의료봉사에도 열심이다. 이승철기자

대학시절 친구와 '제주서 살자’는 약속 이뤄
열심히 사는 복지사들 보며 의료봉사 거들어

"나중에 나이들면 제주에 가서 살자." "그러자. 우리 인생의 노후는 제주에서 함께 보내는 거다."

혈기왕성한 20대시절 친구와 술자리에서 오고간 이야기는 현실이 돼 조담래(50) 원장을 제주로 인도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조 원장의 친구는 비록 제주에 함께 있지 못 하지만 조 원장의 젊은시절 꿈이자 40~50대의 현실로 영원히 그의 곁에 남아 있다.

서귀포시 중문동에 위치한 중문삼성연합의원에서 진료하고 있는 조 원장은 대학시절 친구와 제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의과대학 재학 당시 산악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2주 동안이나 북한산 인수봉에서 머물다 올 정도로 산과 자연을 좋아하던 청년이었다.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나 조 원장은 제주에 살게 됐다. 그렇게 제주는 앞으로도 함께할 그의 두 번째 고향이 됐다. 조 원장과 젊은시절 꿈을 함께 나눈 친구는 안타깝게도 2010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조 원장이 먼저 제주에 와 있을 때였다.

"많이 울었어요. 친구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병원 문도 닫고 대구에 올라가 있었어요."

그렇게 제주에 내려온 조 원장은 제주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병원을 개원했다. 병원 개원 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응급환자가 병원을 찾았다. 찹쌀떡을 먹다 식도에 걸린 환자였다. 시골병원에는 없는 수술기구들이 다행히도 조 원장의 병원에는 갖춰져 있어 안전하게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그때 찹쌀떡 크기가 거의 4㎝는 족히 됐을 거에요. 시골에서는 기도를 확보해 목에 걸린 이물질을 제거하기가 쉽지 않아 119를 불러 시내병원으로 가야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5분 거리에 큰 병원이 새로 개원한 걸 알고 있던 한 마을주민이 환자를 직접 태워 제 병원으로 안내했어요. 그 환자는 아직도 건강하시더라고요."

조 원장은 평소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그의 이런 자부심과 책임감은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화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시절 꾸준히 노인회관을 찾아 진료봉사를 했고, 지금은 서귀포시 대포동에 위치한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자광원 등에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광원은 제가 종종 찾는데 그곳의 사회복지사들이 정말 열심히 해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의사로서 보탬이 되고 싶더라고요. 의약회사에서 샘플로 파스라도 나오면 가져다 드리려고 신경쓰죠. 사실 젊었을 때는 장사한다는 생각으로 병원을 운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금 안 밀리고 제때 낼 수 있을 정도만 벌면 되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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