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7월이 되면 나를 위한 행사를 갖는다. 여성들에 대한 책을 읽기도 하고, 여성의 삶을 다룬 영화를 보기도 한다. 여성주간이 있는 7월에 내 스스로 여성임을 자축하는 나만의 행사인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여성임에 긍정적 가치를 부여하게 되기까진 쉽지 않았다. 무남독녀로 태어나 노부의 가슴을 시리게 만드는 장본인이 나였고 첫딸을 낳고 힘들어하는 맏며느리도 나였기 때문이다.
늦은 나이에 혈육을 얻은 친정아버지는 아들을 고대하셨다. 나는 사내아이처럼 상고머리를 하고 유년기를 보냈다. 결혼 후엔 첫 딸을 낳았다. 장남인 남편에게서 아들을 기대하셨던 시댁어른은 실망하셨고 나는 주위의 냉담한 반응에 서운했었다.
'아들을 못낳으면 어떻게 하지?'
산고가 가시기도 전에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걱정에 빠져들었고 결국은 미역국도 제대로 들이키지 못하고 산후조리를 끝내야 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나 나는 그 아들을 낳았다. 가족들의 얼굴엔 웃음이 만면했었다. 친정아버지의 말씀대로 장한 일을 해낸 것이다.
어느덧 삼십년이 지났다. 대견하게 첫 출산을 하고도 가슴 한켠이 시려왔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곳곳에 숨어있었던 사회적 제약과 문화적 차별들.
나는 여자로 태어났지만 솔직히 여자로서의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가 살아왔던 것처럼 희생으로 인내로 전형화된 삶이란 젊은 나에게 천형처럼 다가왔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삶이 쉬웠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여성이라는 굴레의 불편함을 벗어버리고 싶었다. 사회적으로 자유롭게 인간적으로 존중을 받으며 그렇게, 그렇게 살기를 바랐다
나이를 먹으면서도 생각은 변함없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출생으로 인한 차별은 없애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느꼈던 여성으로서의 무력감을 딸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고 은연중 과시되는 남편의 우월감 역시 아들아이에게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이루어질 성의 평등을 기대하며 조물주가 창조한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양성(兩性)의 공존을 꿈꾸었다.
그러나 머리와 가슴은 다르게 반응했다. 딸아이에게 외적인 아름다움보다는 능력을 갖추라고 말하면서도 아들아이에게는 남성적 우월성을 세뇌하고 있었다. 여성과 함께하는 사회문화를 고민하던 날카로움의 이면엔 언제나 남성에 대한 동경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분출되는 이율배반적 사고와 행위에 내 스스로 얼마나 당황했던가.
나는 적잖은 기간 여성과 관련된 일들을 해왔다. 누가 시켜서도 나에게 이익이 생겨서도 아니다. 더구나 남성과 대립하거나 여성이 주도권을 잡기 위함은 더욱 아니었다. 여자로 태어났기에 가져왔던 피해의식, 여자이기 때문에 감당했던 불합리한 요소들에 대한 치유와 개선이 필요했었다. 성(gender)이란 자신이 선택할 수도 생태학적으로 동일시될 수도 없는 것이 아니던가.
그동안 주도적으로 사회를 이끌어온 남성들이 가졌던 자존감을 나누는 일, 아마 그것이 행복한 양성공존의 시작일 것이다. 여성주간을 맞아 그동안 고여 있던 생각을 올려본다. <허경자 서귀포시여성발전연대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