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이상 모여 있으면 집단이라고 하고 그 두 사람 사이에서 상호작용이 일어나면 사회가 형성됐다고 한다. 어떤 목적 때문에 두 사람이 모여 있고 일정한 기준과 가치를 근거로 그 상호작용이 이루어질 때는 조직이라고 부른다. 태어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운명적 '집단'이라고 부르고 영향력을 행사할 때는 '조직'을 장악한다고 표현한다. 한국 '사회'라고 하지 한국집단이나 한국조직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집단, 사회, 조직은 두 사람 이상이 모여 있는 상태를 가리키지만 의미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참 다르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사회나 조직이 형성될 때 상호작용을 이끄는 관념이다. 개인주의에 근거한 상호작용은 나와 너는 다르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서로 다르다는 전제 때문에 상호작용에서 각 사람의 말의 분량은 비슷하고 자주 물어본다. 확인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말해야 하는 문화적 규범이 강하다. 독립심이 강해야 살아남는다. 나의 존재가치는 너와 다른 데서 비롯된다고 본다.
반면 집단주의는 너와 나는 비슷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다. 틀리게 생겼다느니, 바지 색깔이 틀리다느니 등 다르다고 말해야 할 것을 틀렸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다른 것은 옳지 않다. 특이하거나 유별난 것은 부정적 뉘앙스가 더 강하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이나 직업 등 신상을 터는 질문을 하게 되는 이유도 서로 비슷한 요소를 찾아내 거리감을 줄여 보려는 생존방식일 것이다. 비슷한 요소가 나오면 형님, 동생하자며 운명적 집단에서 서로를 지칭하는 언어로 서로의 거리를 확 줄여 놓는다.
자기 자신을 한정해서 말하는 것이 어렵다. 너와 공유하지 않는 나의 것이지만 주로 '우리'라는 소유격을 많이 사용한다. 이러한 언어습관은 개인주의적 상호작용 속에서 확연하게 어긋난다. 한국남자가 한국서 하던대로 자신의 부인을 우리 부인 'our' wife라고 소개하자 이것을 들은 서양 사람이 그 사람은 너의 부인이지 나의 부인은 아니라고 놀라서 펄펄 뛰었다는 일화를 들어봤을 것이다. 버스 구조도 개인주의 문화와 집단주의 문화가 다르다.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버스 안 곳곳에 스피커가 달려 있다. 운전자가 좋아하는 방송을 승객 모두가 듣는다. 설사 원하지 않는다 해도 누구도 꺼달라고도 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운전자도 자기가 틀어 놓은 소리가 괜찮은 지 묻지도 않는다.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운전자가 조그만 소형 기계를 들고 다니며 자기만 듣는다.
두 사람 이상이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모였을 때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규칙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나을까? 속전속결로 정해진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면 집단주의가 훨씬 유리할 것이다. 지위가 높은 소수 개인의 생각과 아이디어가 곧 그 집단의 다른 개인들 것이어서 지시만 내려지면 일사천리로 움직인다. 그러나 그 조직은 목적은 빨리 이룬다 해도 많은 상처받는 개인을 양산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 부는 힐링 열풍은 이 다수의 상처받은 개인들의 아우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조직은 목적을 이루었지만 개인은 무기력함을 느끼는 것이다. 개인 이기주의도 집단 이기주의도 아닌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우리 모두의 '사회'는 어떤 상호작용적 원칙에 근거해야 하는 지 이 힐링 열풍의 바람을 맞으며 생각해본다. <장신옥 제주대학교 세계환경과 섬 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