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동티
  • 입력 : 2013. 09.11(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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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 고향에서 벌초할 때의 일이다. 산담 근처에 못생긴 나무 한 그루가 있길래 벌초하는데도 성가시고 볼품도 없어서 삼촌더러 베어버리면 좋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전에도 한 그루 베어버린 적이 있는데 마침 그 몇달 뒤에 어느 친척이 간암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점쟁이 말로는 '동티'가 나서 그랬다고 한다. 헤아려 보니 벌초하면서 나무를 베어버린 것이 원인으로 지목돼 한동안 원망을 많이 받았다면서 남은 한 그루를 섣불리 베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20여 년 전, 힘든 13주간의 군사훈련을 마친 뒤 군의장교 임관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삼군 사관학교에서 군의학교로 돌아와 육해공 삼군과 임지를 배치 받는 일만 남겨놓고 있었다. 훈련이 끝났다는 기쁨도 컸었지만 일단 해군으로 배정 받았기에 멋진 해군 장교복을 입을 생각을 하며 들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판정에선 뜬금없이 현역이 아닌 예비역으로 편입돼 버렸다. 전공도 외과이고 신체검사에도 자신이 있던 터라 분명 현역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었기에 잠시 실망했었다. 다소 풀이 죽어서 내무반으로 돌아오니 오히려 경사스런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당시엔 영문도 모른 채 임지인 강원도 태백시의 모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나중에 안 사실은, 같은 처지의 공보의가 부모가 미국에 살고 있어서 현역으로 배치가 되지 않았고 아마도 나 역시 부모님이 외국에 살고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부모님의 음덕이 나를 공보의가 될 수 있게 했나보다고 웃으며 자축했었다.

그 당시의 일이다. 어느 날 오후 중년의 아주머니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유방 근처에 멍울이 있어 내원한 환자였다. 진찰해 보니 유방 바깥쪽으로 생긴 조그만 덩어리인데 유방하곤 관련이 없어 보여서 조직검사를 권했는데 며칠 후 조직검사 상 전이성 암으로 나왔다. 원발 부위가 어딘지 알 수 없다는 결과를 보고 환자에게 서울에 있는 종합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도록 권했다. 한 달인가 후에 찾아와서 원발 질환이 자궁암이었고 전이가 있어서 수술 받고 항암 치료한다고 했기에 그나마 일찍 발견돼서 다행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몇 개월 흐른 뒤에 또 다른 환자가 내원해서 진료해 보니 유방멍울이 있어서 조직검사를 권했는데, 집에 가서 의논해 보고 온다하고는 다음 날 와선 안 한다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전에 어떤 분이 여기서 조직검사를 했더니 암이 전신으로 퍼져서 사람들이 칼을 대지 말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아차! 뭔가 와전됐구나'라고 느꼈다. 사람들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판단하기보단 다른 것에 투사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일만 해도 칼을 댄 것 자체가 병을 악화시켰다고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또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남의 탓을 많이 한다. 잘 되면 자신이 잘난 '덕분'이고, 잘못 되면 조상 '탓'이라더니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우리가 살면서 부딪히는 모든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원하는 대로 그렇게 돌아가 주지 않는 것이 또한 세상일이기도 하다.

벌초의 시기가 돌아왔다. 산으로 들로, 가족묘지며 공원묘지가 벌초하는 인파로 뒤덮이게 될 것이다. 벌초하는 그날 만큼이라도 조상에 대한 고맙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며, 친척들과는 오랜만의 만남으로 더욱 유대를 돈독하게 하는 좋은 시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설령 비난을 받을지언정 합리적으로 생각하여 타당한 것은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나은 우리의 공동체 생활, 나아가서 더 나은 우리의 문화를 위해서 좋은 일이 아닐까 새삼 생각해 본다.

<성대림 서귀포의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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