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섶섬 자리여에서는 '물 반 자리반'이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큰 무리의 자리돔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특히 연산호에서 군무를 이루는 자리돔의 모습은 다이버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김진수 자문위원
수심 20m 대형 암반· 바다수지맨드라미 활짝
바다 아열대화로 제주산 자리돔 명성 사양길
자리돔하면 제주를 떠올릴 정도로 자리돔은 제주도의 상징적인 어종이다. 제주바다에서 다이빙을 할 때면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기도 하다.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자리돔은 제주바다 어디에서나 관찰할 수 있지만 쉽게 많은 무리를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바로 서귀포시 보목포구와 섶섬 사이 자리여다.
제주에서 자리돔이 가장 많이 잡히는 이곳은 어부들에 의해 '자리여'라고 불려진다. 수중 바닥이 암반으로 돼 있는 곳을 '여'라고 하는데 자리가 많다고 해서 '자리여'라는 것.
섶섬의 북동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약 300m 지점부터 시작되는 자리여는 수심이 14~30m에 이른다. 최근 탐사대가 자리여를 찾았다. 비가 올듯 말듯 오락가락하는 날씨를 보인 가운데 수중 시야는 좋을 것 같지 않았다. 때마침 탐사대가 자리여를 찾았을 때는 소형 어선에서 한 어부가 낚시를 하고 있었다. 서로 방해가 될 것 같아 선장이 가리키는 자리여보다 조금더 동쪽으로 이동해 입수를 진행했다.
날씨 탓인지 하강하는 동안 함께하는 다이버들의 모습만이 보일 뿐 뿌연 바닷물만이 주위를 감싸며 끝이 보이지 않는 물밑으로 가라않는 느낌이었다. 스쿠버다이빙 초급자의 경우 이런 보트다이빙을 할 때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 때문에 공포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초급자인 기자는 다행히도 주변 탐사대에 의지해서인지 큰 무리없이 정상적인 호흡을 하면서 하강할 수 있었다.
수면과 바닥 사이의 두터운 터널을 뚫고 포인트 바닥에 다다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세로운 세상이 눈 앞에 펼쳐졌다. 수심계는 20m를 가리키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모양을 한 대형 암반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지형은 인근의 칼포인트와 비슷했지만, 하나의 암반이 거대하고 틈틈이 아치인 듯 동굴인 듯한 지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거대한 암반에는 바다수지맨드라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포인트 이름처럼 탐사대 주변으로 어느새 큰 무리의 자리돔들이 에워쌌다. 고요한 암반세계 속에서 잘 훈련된 군대처럼 움직이는 자리돔 무리들을 보며 일상의 스트레스도 한번에 쓸려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자리돔 무리속에서 유영을 하다 암반이 만들어낸 아치에도 들어가보고 연산호를 감상하다 보니 공기가 얼마남지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천천히 일상으로 돌아가며 자리돔과의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제주와 자리돔='물 반 자리 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리돔은 제주바다를 대표하는 어종이다. 서귀포시 보목동에서는 매년 보목자리돔축제가 성황리에 열리기도 한다. 제주 자리돔은 청보리가 나올 무렵인 5월부터 제주 근해에서 많이 잡힌다고 해서 제주사람들은 '보릿자리'라고도 불렀다. 산란기인 5월에 잡히는 자리돔은 알이 꽉 차 물회를 해 먹으면 그맛이 일품이다. 특히 보목 바다에서 나오는 자리돔은 다른 곳 자리돔과 달리 뼈가 부드러워 물회용으로 최고라는 말도 있다. 올해 열린 '수산일품 자리돔 큰잔치' 행사에서는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고망낚시는 물론 맨손으로 자리돔 잡기, 젊은 엄마들이 참여하는 자리물회·자리무침·자리젓갈 만들어보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마련돼 도민과 관광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섶섬 자리여'를 찾은 탐사대.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우리나라 바다의 수온상승, 제주바다의 아열대화로 인해 자리돔이 제주특산이라는 명성도 흔들리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석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0년에서 2002년까지만 해도 100% 제주산이던 자리돔이 점점 경남과 부산, 전남쪽에서도 잡히고 있기 때문이다. 경남 해상에서 2008년 18톤에서 2011년 81톤까지 자리돔 어획량이 늘어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상승으로 제주도 연안어류로 출현했던 어류들 중 아열대성 어종들이 40~45%이상 출현율을 보이고 있으며 제주 특산종인 자리돔이 3~4년 전 이미 부산 오륙도 부근까지 북상했다고 전하고 있다.
고대로·최태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