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10월은 그야말로 설렘 그 자체였다. 10월1일 국군의 날, 10월3일 개천절, 10월9일 한글날, 여기에 추석이라도 끼어있으면 그야말로 10월은 내 세상이었다. 당시 나는 어린 마음에 어린이날도 10월달에 있었으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그러다 어느 해부터인가 빨간 옷을 입었던 날들은 하나 둘씩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한글날도 반복적인 일상의 쳇바퀴 속에 들어갔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공로는 만원짜리가 혁혁하게(?) 증명하고 있다. 세종대왕의 공로는 한글창제를 반대하던 신하들이 많았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한글창제를 반대했던 대표적인 신하는 최만리였다. 최만리가 한글 창제를 반대했던 이유는 많지만 국제화와 독립적 사고에 대한 고민으로 정리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 문화의 중심은 중국이었다. 당시 중국은 문화, 경제를 이끌어 가던 초강대국이었다. 중국의 문명은 거의 대부분 책을 통해 조선에 들어왔는데, 그 언어가 한문이었다. 그렇기에 한문을 버리고 한글을 쓴다는 것은 문물을 받아들이는데에 장애요소를 두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뒤처질 경우, 국제사회에서 낙오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작금의 대한민국 사회가 영어에 목매달고 사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앞으로 조금씩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구글에서 외국어 번역기등을 활용해보면 70% 이상 정확하게 해석되는 언어도 있고, 최신 핸드폰은 기본적인 동시통역 기능도 있다. 영화 설국열차에서도 동시통역기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가까운 미래에 생활 언어의 장벽은 사라질 것이고, 그때가 되면 정말 필요한 몇몇 사람만이 외국어를 공부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필자는 독립적 사고의 문제를 보다 신중하게 바라보고 있다. 최만리는 훈민정음을 사용하면서 과연 독립적인 사고를 생산해 낼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독립적인 사고란 일상생활에서의 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일상생활을 넘어선 복잡하고도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 언어구조를 뜻한다. 그런데 순수 국어로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어휘가 얼마나 될까?
대학교재나 법전을 보면 한자단어가 참 많다. 이 단어들은 대부분 일본 명치시대에 외국서적을 번역하면서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어휘들은 해방되면서 우리 학계에 그대로 이식됐고, 당시 학계에선 이를 대치할 수 있는 단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실제 국어사전의 어휘는 옥편에 실린 것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세월의 차이가 있기는 해도, 국어의 힘이 약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필자는 사회의 책임으로 돌리기에는 한국 학계의 무관심이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
생각의 시작은 모두 다르지만, 결국 언어와 문자를 통해 표현된다. 일단 표현된 글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닌 사회의 일부로 남는다. 그리고 생각의 조각들이 하나 둘씩 모여 사회를 이루고, 시대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 생각의 바탕에는 바로 어머니의 말인 모국어가 있다.
올해 10월 달력을 보자. 한글날, 빨간 옷을 입고 있다. 1991년 공휴일에서 제외된 후 20여년만에 갈아 입은 옷이다. 오늘 하루, 어머니를 그리워하듯 국어를 생각해 봤으면 한다.
<김새미오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