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탁상공론

[하루를 시작하며]탁상공론
  • 입력 : 2013. 10.16(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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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형, 60년만의 가뭄이라 했던가요? 지난 여름 그 끝 모르게 타들던 날들이 어제 같은데, 어느덧 10월 완연한 가을이네요. 청량한 들녘에 서서, 그리움처럼 영그는 귤들을 봅니다. 숨 막히는 그 가뭄 속에서도, 한 알 한 알의 꿈을 한사코 놓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던 그 처절한 모습이 자꾸 떠오르곤 합니다. 기어이 혼신의 결실을 이고 선 안간힘의 귤나무들, 그 앞에 서면 눈물이 핑 돌기도 하는 연유입니다.

사연에 아랑곳없이 0형, 해마다 이쯤이면 논란이 되는 그 감귤 1번과 얘깁니다. 맛좋고 소비자들의 선호도도 높다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인데요, 그런데 왜 이를 상품에서 제외시키느냐 하는 거지요. 1번과를 유통하면, 전체 감귤 값이 몇 프로 떨어져서 결과적으로 손해 본다는 말 같은데,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요? 소비자가 선호하는 1번과를 시장에 내놓는 것이 어떻게 감귤 전체의 값을 떨어뜨려요? 말이라도 좀 되는 소리를 해야 말이지요. 오히려 소비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매년 생산자에게서 억지로 격리된 1번과가 과연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 줄이나 아시는가요? 그 전량이 잡상인 손을 거쳐 소비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현실 말입니다. 이는 결국 생산자에게서 1번과를 뺏어 잡상인들 살찌우는 행위 그 자체입니다. 단속? 어쩌다 한 두건 해서 동네방네 떠들어 대는 것, 그 빙산의 일각은, 전형적인 전시행정의 빛 좋은 개살구지요. 안이한 그 틈새를 유유히, 1번과는 모두 소비자손에 들어갑니다. 물 흐르듯이요.

혹,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1번과 상품에서 제외'를 외치고 있다면 패륜입니다. 또, 이런 사실조차 아직 모르고 있다면 집에 가셔야지요. 뭣도 모르면서, 제발 섞어탕 그만하시고.

단속을 강화하면 될 거 아니냐고요? 누가 누구를 어떻게 단속한다는 말입니까? 명분도 없는, 대책도 없는, 실효도 없는, 그 알량한 탁상공론을 내세워, 피땀으로 일궈 온 생산자에게서, 기진한 그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1번과를 빼앗아 피해를 입히고 있는 당국이 단속대상일까요? 아니면, 기왕에 생산자에게서 격리된 1번과를, 내다팔기만 하면 막대한 벌이가 되는 그 여건을 활용한, 잡상인이 단속대상인가요? 대체 그 원인 제공자가 누구냐 하는 점입니다. 세상엔 이보다 더 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다 차려놓은 밥상을 해먹지 못 한다면 그건 잡상인도 아니지요.

65% 이상이 1번과 유통을 바란다는 통계를 뻔히 보면서도, 아득바득 이를 막는 이유가 무엇이지요? 생산자를 기어코 희생시키며 잡상인 배를 채워주는 그 저의가 대체 무어냐 말입니다. 혹시, 사돈의 팔촌이 잡상인인가요? 그렇잖아도 어렵고 지친 농민들을, 이제 더 이상은 수탈하지 마세요. 소비자가 외면하면, 요란법석 떨지 않아도 1번과는 자연히 도태됩니다. 흐름에 맡기세요. 그냥, 그 시장원리에 맡겨 두라는 것입니다.

0형, 농장에 안 가는 날은, 새벽 어스름을 달려 새섬에 갑니다. 한라산과 확 트인 바다와 만선 뱃고동 몇 바퀴 돌면서, 한바탕 섀도복싱(혼자서 하는 권투연습)을 거르지 않아요. 땀이 흥건히 밸 때까지 악물고 나면, 소소한 잡념들은 씻은 듯하지요.

생각 같아선 0형, 몸과 마음을 바짝 조여서, 다시 한 번 링에 오르고 싶습니다. 그 비릿한 글러브의 땀내음, 피내음이 문득문득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강문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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